<명구>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해석>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무엇인가를 아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즐거워하는 것...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다. 물론 알지 못하면서 좋아함과 즐거워함을 논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그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아는 것이 지(知)의 차원이라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행(行)의 차원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 상황에 따른 선택의 차원이라면 즐거워하는 것은 늘 하고 싶어 하는 욕구의 차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때때로 상황에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즐거워하는 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하려고 노력한다.
등산을 예로 들어보면, 등산이 몸에 좋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실제 등산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도 차이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상황이 허락될 때 등산을 하지만, 때로는 피곤함을 이유로 또는 날씨를 핑계로 등산을 접기도 한다. 하지만 즐거워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기쁨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에 손꼽아 기다리는 설레는 일이며, 하지 않으면 오히려 아쉬운 마음을 갖는다.
이것을 좀 더 넓혀 인생의 문제로 가져와 보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물론 이런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아무런 고민 없이 한 세상 살아갈 수 있다면, 굳이 고민스런 질문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많은 인생살이는 그렇지가 않다. 쉬운 일도 어려운 일도,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있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다면, 그런 삶을 직시하여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맛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스로 느끼고 고민하면서 인간으로서 가야할 떳떳한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기도 하고, 그리하여 그 떳떳한 삶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든지 인간으로서 ‘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나의 처지, 나의 모습, 나의 고민을 직시함으로 해서 그런 나를 먼저 인정하고 느끼려 할 때, 진정 내 인생이 투명하게 다가오고 그리하여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이해의 기반 위에서 제대로 인생의 의미를, 세상의 의미를 느끼고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앎’의 문제는 실생활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고민스런 삶의 문제에 대해 직시하여 그 의미를 ‘앎’의 차원으로 이끌어냈다면, 이제 내 인생에 애착을 느낄 수 있는 ‘좋아함’의 차원으로 옮겨가야 하고, 그것이 떳떳하고 뿌듯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즐거움’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좋아하고, 제대로 즐기는 인생... 그 시작은 인생에 대한, 나의 삶에 대한 작은 관심과 이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출전> : 『논어(論語)』, 「옹야(雍也)」
<집필자> : 심규하 / 성균관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