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天地設位, 聖人成能, 人謀鬼謀, 百姓與能.
<해석> 천지가 위치를 설정하니 성인(聖人)이 능력을 이루며, 사람이 도모하고 귀신이 도모하여 백성이 더불어 능력을 발휘
한다.
세상이 건전하게 제자리를 자리잡고 성인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으면 인간의 현실적인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위에 보이지 않는 일도 순조로이 진행되므로 사회나 국가에서 각 개인의 능력이 조화롭게 잘 발휘될 수 있다.
여기에서 성인은 일반사람들과 같은 인간이면서 그들과 차별되는 리더십의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렇다고 성인이 국가나 사회의 어려운 현실에 처했을 때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이를 구제하는 영웅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성인과 영웅은 모두 사회공동체적 의식의 발산이나 사회심리적 요인의 결집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영웅은 특정의 시대에 특정의 지역에 공동체의 의식이 한 순간에 집중적으로 수렴되어 사회심리적으로 분출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특출난 인물인 반면에, 성인은 꾸준히 사회적 합의라든가 국가적 결집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상적 인물이다. 영웅이 시대적 정신 혹은 지역적 염원에 바탕을 둔 단기적으로 분출된 감성의 산물이라면, 성인은 마찬가지로 시대적 정신 혹은 지역적 염원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성의 산물이다.
주공, 공자 등으로 대변되는 성인은 초인적 혹은 제왕적 권위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사고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세계의 변화를 조망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활용할 줄 아는 인간이다. 성인은 세계의 변화를 조망하고 세계와의 교감을 통해 창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그는 세계의 네트워크 속에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과 그 변화의 양상들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본다. 그러므로 그는 세계를 이해하면서도 세계를 개척하는 자아창조적 삶, 즉 이른바 자아실현(self-realization)을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성인정신(聖人精神)의 인문주의적 소재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리더십의 문화적 표상과 삶의 이정표를 엿볼 수 있다. 최근에 리더십에 대한 요청이나 그에 대한 추종은 사회심리적으로 현실적 고통과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현실적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에 입각하여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창조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현대사회에서 리더십을 개인의 능력이 조직이나 집단에 적용된 사회적 역량으로 본다는 점에서 리더십은 성인과 같은 특정의 개인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나 국가에서 각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조화롭게 잘 발휘할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인이면 누구나 다 리더십을 지니고 있으며 누구나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출전> : 『周易』, 「繫辭傳」 下
<집필자> : 김연재 / 공주대학 동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