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해석>
사람은 흐르는 물에 비춰보지 않고 멈추어 있는 물에 비춰본다. 오직 멈출 수 있는 자만이 여러 사람들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내용>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마디로 바쁘다. 달리기만 하고 멈추지 못하는 형국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막 달려야 편안해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조장한 측면이 있다. 무한 경쟁에서 이기는 소수에게 재화가 쏠리는 구조 속에서는 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속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된 사람조차도 계속 달리게 된다. 계속 달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인 줄, 넘어지거나 멈추면 도태되어 실패하는 줄 아는 까닭이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이럴진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이야 오죽할까. 사람들을 이러한 달리기 전쟁에 내몰아 몸도 못 쉬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하는 사회에서 행복하기란 어렵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에서 니부어의 표현을 빌리면 ‘한 인간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요구하기 전에 사회의 관행과 구조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현대인의 이런 불행한 삶을 사회 구조 개선으로 청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나쁜 구조가 다 바뀌도록 기다리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고, 구조를 좋게 바꾸어도 여전히 그만큼의 불행한 사람이 있으며, 무엇보다 현대인의 막 달리는 삶이 주체적 선택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외부의 강제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와 경쟁하면서 자기 삶을 소진하고 있다. 열심히 달리는 것 자체가 성장하는 삶인 줄 아는 까닭이다. 이런 모습은 현병철이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과념 속에서 자기 삶이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21세기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은 이런 자기 착취의 결과적 현상이다.
장자(莊子)도 이와 비슷 시대적 상황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는 전국 시대 중기에 계속되는 전쟁과 정치적 폭력 구조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져가는 것을 보았다. 지배 계급은 끊임없는 소유와 권력이라는 외물(外物)의 유혹에 의해, 백성들은 폭력적 정치 구조라는 외물의 폭력에 의해 부려지고 있었다. 정치력에 의한 구조적 해결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던 그는 스스로 생명을 보존하고[保身]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全生] 길을 제시하였다. 그 중 하나가 스스로 멈추어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다. 외물에 부림을 당해 막 치달리던 것을 멈추고 마음을 고요히 하면,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아 사물의 진면목을 비출 수 있게 된다. 그런 사람이 장자가 요구하는 참된 인간이다.
마음이 고요하여 거울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평화롭게 해 줄 수 있다. 참된 자기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스스로 막 달리며 치닫는 삶을 멈추고 고요해질 수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멈추지 못하는 질주도 그치게 할 수 있다. 장자는 지체장애인 왕태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유를 왕태의 ‘멈춤[止]의 덕’에서 찾고 있다. 그 덕은 어떤 외물에도 마음을 뺏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런 힘을 가진 사람 주변에는 사람들이 찾아 모여든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자신의 참 모습을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인은 거울처럼 가만히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에게서 참된 삶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먼저 치달리기를 멈추어 거울처럼 고요해지는 것!!
<출전> : 『莊子』 「德充符」
<집필자> : 김권환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