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巧詐不如拙誠
<해석> 치밀하지만 거짓된 것은 어수룩하지만 참된 것만 못하다.
<내용>
“문송하다”라는 슬픈 조어가 말해주듯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하면 죄송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흐름을 놓치는 순간 경쟁에서 도태되고 마는 시대에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원하기 그지없다. 인문학뿐 아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일은 사회가 중시하는 기준을 발 빠르게 따르는 명민함 앞에 비웃음과 자조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한비자는 “치밀하지만 거짓된 것은 어수룩하지만 참된 것만 못하다”라고 말하며 재빠른 명민함보다는 더딘 우원함을 우위에 둔다.
한비자는 공을 세우기 위해 자식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한 부정과 주군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한갓 짐승의 모정에 동정을 베푼 신하의 이야기를 대비시킨다. 적군이 보내온 아들을 삶은 국을 마시면서도 흔들림 없이 전쟁을 수행한 악양(樂羊)과 어미 사슴의 울음에 주군이 잡은 새끼 사슴을 풀어 준 진서파(秦西巴)의 이야기이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점에서 비정한 아비의 선택은 교(巧)였고, 주군에게 최소 밉보이거나 최악의 경우 죽음을 당할 수 있었음에도 짐승의 새끼를 놓아준 신하의 선택은 졸(拙)이었다. 하지만 치밀하게 주군을 위해 행동한 아비는 그 충정이 아들마저 외면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거짓이었고, 주군의 명을 어긴 물정 어두운 신하는 그 마음이 자신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베푼 인정이라는 점에서 참이었다. 결국 악양은 진정한 신임을 받지 못했고, 진서파는 무한한 신뢰를 받게 된다. 다른 이도 아니고 이익을 중시한 법가의 사상가가 참된 마음을 앞세우는 것을 볼 때 참된 마음은 효용 측면에서도 훌륭한 가치인 것이다.
살면서 이것이 좋을까 저것이 좋을까 저울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러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어느 것이 내게 이득이 되는 길일까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이런 저울질보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한비자가 들려주는 고사를 통해 배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막고 외부 기준에 휘둘려 더 나아 보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거짓일 뿐이다. 당장은 교(巧)일 수 있겠지만 결코 오래갈 수 없고, 예상치 못한 참담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이 글귀를 먼저 주목한 분은 고 신영복 선생이다. “졸렬하지만 성실한 삶, 그것은 언젠가는 피는 꽃입니다”라는 말을 통해 선생은 우직한 졸성(拙誠)의 가치를 밝힌다. 세상을 향한 선생의 따뜻한 시선도 함께 실어 전한다.
<출전> : 『한비자(韓非子)』 「설림 상(說林 上)」
<집필자> : 조정은 /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