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子曰, “鄕愿, 德之賊也.”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다.”
<내용>
공자는 향원을 가리켜 덕을 해치는 자라고 말한다. 더 이상 설명이 없어서 향원이 어떤 사람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공자가 난색을 표하며 선한 자가 좋아하고 불선한 자가 싫어하는 자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향원은 자신을 보기 좋게 위장하는 데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명성이 자자한 선비에 대해 겉으로는 어진 모습을 취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고, 평소 이런 모습에 의심조차 품지 못한다고 폄하했는데, 이런 부류도 향원일 것이다.
왜 공자가 향원을 비난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에게 맹자는 사이비(似而非)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들은 위장에 능숙해서 비난 받을 구석을 좀처럼 찾을 수 없고 오히려 훌륭한 인격자처럼 보인다. 웬만한 사람은 모두 속아서 칭찬하지만 실은 사이비인 것이다. 맹자의 말처럼 사이비가 요순의 도를 실천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공자의 비난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덕이 없을뿐더러 덕을 해치기까지 한다. 맹자가 길게 설명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다. 사이비가 그 정도 비난을 들을 만큼 나쁜가? 드러내 놓고 패악을 부리는 사람보다는 패악스러운 성질을 감추고 점잖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위장술에 능한 향원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영화는 2012년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다. 검사는 상냥한 말투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질문한다. 질문은 더없이 부드러운데 대답하는 이는 두려움에 울먹이며 짧게 “예”라고 말할 뿐이다. 올가미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허위 진술을 하는 상황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기묘하게 들릴 대화이다. 집요하게 따져 묻는 기자에게 검사는 만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재판에서 말씀 드리겠다는 말을 친절하게 반복한다. 대화를 들을 수 없는 거리였다면 교양 따위는 갖다 버린 지 오래인 막무가내 인사에게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 신사의 모습으로 비춰질 장면이다. 명색이 국가 기관이라는 곳이 다른 나라 공문서까지 위조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또 다른 국가 기관은 위조라는 항의에도 검증은 안중에도 없다. 조작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사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 모든 일은 우아하게 이루어진다. 이들 강자의 우아함은 진실을 밝히려는 약자의 우악함과 대비되며 더욱 도드라진다.
패악이 패악으로 드러나면 비난할 수 있다. 비난할 수 있다면 제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련된 가면 뒤에 숨으면 비난부터 막힌다. 패악의 직접적 희생자가 아닌 한 우리는 가면과 일정 거리를 둔 채 사태를 파악한다. 가면이 가린 패악을 마주 보기는 더욱 요원하다. 강자가 쓰고 있는 점잖은 가면을 벗겨 내고 그 뒤에 숨은 본질에 다가갈 때 우리는 비로소 향원을 향해 덕을 해치는 자라고 일갈한 공자의 노여움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 「양화(陽貨)」
<집필자> 조정은 /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