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民之飢,以其上食稅之多.
<해석>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윗자리에 있는 자가 세금을 걷어먹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내용>
정치의 요체는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이 의식주(衣食住)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주장한 유학의 정치사상은 백성의 항산(恒産) 즉 의식주의 안정을 확보하는 경제적 안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노자와 장자의 도가사상도 백성이 걸림이 없이 자연스럽게 생명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하였다. 현대의 민주주의도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데도 삶의 안정을 잃고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윗자리에 있는 자가 세금을 걷어먹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백성들이 평등하게 의식주의 기본을 확보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다운 꿈이다. 이런 세상을 이루는 위정자가 바로 성인이며 훌륭한 대통령이다. 정치를 맡아서 백성들을 이끄는 위정자들은 백성을 배불리 먹게 하고, 주거를 안락하게 하며, 평안하게 살면서 수명을 다하도록 삶의 여건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은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걷어먹는 위정자로서 기본적인 의무이다. 전통시대의 봉건제도나 현대의 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정치를 맡아 다스리는 자와 그들을 부양하는 백성 또는 국민의 관계는 똑같다. 위정자는 나라와 백성의 안녕(安寧)을 위해 모든 지혜와 양심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 백성은 이런 위정자들의 헌신에 대하여 세금(稅金)이라는 물질적 후원으로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백성은 나라를 존립(存立)시키는 근원이다. 백성으로부터 나라를 이끌어 가라는 위임을 받은 위정자도 근본적으로 백성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도 위정자가 백성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을 괴롭히게 되면 세상은 혼란하고 온갖 악행이 횡행하게 된다. 백성의 권리를 위임받아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이 이른바 가렴주구(苛斂誅求), 즉 백성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며 백성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는 짓을 저지르면 세상은 혼탁해진다. 나라의 뿌리인 백성은 굶주리고, 삶의 안식처인 민생의 가정이 붕괴하며, 인간다운 가치가 동요하여 강상(綱常)의 윤리규범이 무너진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제국을 이루었던 진(秦)나라는 가혹하게 백성을 괴롭히며 세금을 거두어 향락을 누리다가 일찍 멸망하였다.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고혈을 빨아 징수한 세금을 로마에 상납하던 세리(稅吏)는 예수 당시에 세상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다. 또한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군의 봉기(蜂起)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자는 바로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가혹한 세금을 걷으며 가렴주구를 일삼던 고부군 군수 조병갑이었다. 백성은 나라를 떠받치는 반석(盤石)같은 토대이며, 국가를 순항(順航)시키는 바다와 같은 근원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보자면 위정자의 가렴주구와 학정(虐政)이 지속될 때 언제나 배를 전복(顚覆)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나라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오직 백성과 국민을 두려워하는 위정자만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출전> : 『노자』 75장
<집필자>: 박지현 /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