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括囊, 无咎无譽
<해석>
자신의 입을 닫고 사립문을 걸어 잠가 명예도 버리고 작은 허물도 허용치 않는다.
<내용>
곤괘의 육사효의 자리는 음의 자리에 음의 효가 앉은 형상인데, 음의 형세가 지나치게 강한 국면을 상징한다. 주역에서 음(陰)은 발산성이 아닌 수렴성을, 적극성이 아닌 소극성을 의미하는 상징기호이다. 곤괘의 육사효는 흔히 덕 있는 군자가 난세와 난국의 시대를 만난 형상으로 묘사된다. 괄낭(括囊)은 “자루 주둥이를 묶는다”는 말로, 담을 수 있는 것의 입구를 봉쇄하는 모양을 상징한다.
곤괘에서 ‘자루[囊]’가 상징하는 것들에는 사람의 입, 사람이 사는 집, 수레 등 탈 것, 인재를 수용하는 조정(朝廷) 등등을 떠올릴 수 있다. 자루에는 곡식이나 재물을 담을 수 있고, 집은 손님을 맞을 수 있고, 수레에는 무기나 짐 혹은 사람을 실을 수 있고, 조정에는 인재를 수용할 수 있고, 사람의 입으로는 수많은 언어를 표출해 낼 수 있다.
그런데 덕 있는 군자가 난세를 만나 이러한 일상적 활동공간을 봉쇄해 버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난세를 활용하여 출세와 부귀를 누리겠다는 생각을 아예 접겠다는[无譽]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자신을 스스로 철저히 고립시킴으로써 혹여 있을 수 있는 유혹의 접근과 위난의 습격을 미연에 봉쇄하는[无咎] 의지의 행사이기도 하다. ‘괄낭’은 덕 있는 군자가 난세를 만났을 때, 은둔하거나 절필 등을 통하여 자신의 언행을 스스로 틀어막아, 권세의 노예나 주구가 되는 길을 봉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 몸으로 이 난세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한 몸의 절개만은 스스로 간수하여 그 도와 덕을 지켜내고자 필사적 노력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난세에는 단지 한마디의 말과 한 번의 행동 때문에, 또는 단지 한 사람과의 교유 때문에, 의심받고 체포되고 심문당하고 집안과 몸을 모두 망치게[敗家亡身] 되는 경우가 인류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 원문과 이어지는 〈소상전〉의 해석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군자를 보호할 수 있는 행위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다. 〈소상전〉은 “스스로의 입과 손발을 묶어 명예마저 버리고 허물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삼감[愼]’이 해를 막아 주기 때문이다[括囊, 无咎无譽 愼不害]”라고 선언한다. ‘삼감[愼]’은 언사와 행위 두 방면에서의 소극적 태도이자 신중함의 표현이다.
우리는 이른바 ‘공부 깨나 하고, 출세깨나 한 사람들이 이룬 성공이 한방에 훅 가는 경우’를 허다하게 목도한다. 이러한 사태의 거반은 자신의 언사와 행위가 바로 그 흉을 실어 나르는 계단[亂之所生也, 則言語以爲階.-「계사전」 상]이 되어서 발생한 것이다. 자신이 한 말과 이룬 행위만큼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물이 어디 있겠는가! 육사효의 ‘삼감[愼]’의 지혜를 자각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라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군자는 위난의 시기를 당하여 자신의 입을 닫고 사립문을 걸어 잠가 명예도 버리고 작은 허물도 허용치 않는다.”
〈출전〉: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 <곤괘(坤卦)>
〈집필자〉: 박영우/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