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天下無心外之物
<해석>
천하에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
<내용>
양명 선생께서 남진이라는 곳을 유람할 때, 한 친구가 바위 가운데 꽃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천하에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고 하셨는데, 깊은 산 속에서 저절로 피고 지는 이 꽃나무와 같은 것은 내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 꽃을 보지 못했을 때 이 꽃과 그대의 마음은 함께 적막한 곳으로 돌아간다. 그대가 이 꽃을 보았을 때는 이 꽃의 색깔이 일시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밖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저절로 피었다가 저절로 지는 꽃은 내 마음과 무관하게 항상 실재한다. 이처럼 꽃이라는 객관 사물은 내가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항상 존재하고 있다. 세상에는 인간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각종 사물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깊은 산중에 있는 꽃은 계절 변화에 따라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잎이 진다. 이런 작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면 결론 또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왕양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객관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마음과 관련된 내용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꽃의 색깔)과 주체의 행위(꽃을 보는 행위)가 상호 작용하면 꽃이라는 존재가 마음속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반대로 객관 현상과 행위가 상호 작용하지 않으면 꽃과 마음은 서로 관계없는 적막한 상태에 빠진다.
이렇듯 객관 사물은 주체와의 연관 속에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만약 객관 사물이 주체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도 드러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과 사물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주체 존재인 마음을 떠나서는 객관 존재인 물리(物理)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양명에게 물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 핵심 사항은 오로지 마음을 벗어나 사물의 이치를 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과 이치의 괴리 문제이다.
<출전> : 『전습록(傳習錄)』하(下)
<집필자> : 임홍태 /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