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大道廢, 有仁義.
<해석>
큰 도가 사라지자 인의가 생겨났다.
<내용>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윤리규범이 있어야 한다. 법가에서는 질서의 유지를 위해 법을 정면으로 내세운 반면에, 유가에서는 인의를 정면으로 내세웠다. 법과 인의는 동양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두 중요한 기둥이었다. 중국에서의 법의 역사는 실로 오래 되었다. 『서경』에 보면 순 임금 때에 이미 ‘오형(五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가에서는 법에 의한 통치를 비판하였다. 가령 공자는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설령 백성이 이것을 모면한다고 하더라도 수치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백성은 수치심을 알게 되어 바름에 이르게 「『論語』 「爲政」: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라고 하였다. 그는 법의 한계를 직시한 동시에 인의와 같은 윤리적 덕목에 의한 질서를 강조했던 것이다.
법가의 이론은 전국말기에 흥성하였으며, 진시황은 법가 노선의 채택과 함께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진시황의 가혹한 법치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 이후에는 유가의 인의를 정면으로 부각시켰다. 왕들이 비록 제도의 유지를 위해 엄격한 법을 사용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덕치를 표방함으로써 인자한 군주의 이미지로 포장하였다. 그런데 노자는 “큰 도가 사라지자 이에 인의가 생겨났다.”라고 말하였다. 윤리규범을 표방하고 이것을 강력히 주장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역설한 말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장자』 「대종사」에서 “샘이 말라서 고기들이 서로가 땅에 모여들어 서로가 습기를 불어주고 서로가 물거품을 적셔주기보다는 강이나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어버림만 못하다. 요임금을 (성인이라고) 칭찬하고, 걸왕을 (폭군이라고) 비난하기보다는 서로를 잊고 도에 동화되는 것만 못하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與其譽堯而非桀也, 不如兩忘而化其道].”고 하였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헤엄치면서도 물을 의식하지 않는다. 어떠한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가령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자유를 강력히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여기서 노자가 어째서 인의를 비판하였는지에 대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친 윤리규범의 강요는 위선자로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신뢰이다. 상호간의 신뢰가 있다면, 법은 물론이거니와 인의와 같은 윤리규범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신뢰관계가 깨질 때, 사람들은 윤리규범과 같은 것을 강구하게 된다.
<출전> : 『노자(老子)』 18장
<집필자> 장선아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