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聞以有翼飛者矣, 未聞以无翼飛者也.
<해석>
날개가 있어서 난다는 말은 들었겠지만 날개가 없으면서도 난다는 말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내용>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선택에서부터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중요한 선택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같은 대수롭지 않은 선택이야 결정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설렘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지루한 갈등만 마음속에 가득하다. 선택이라는 숙제가 내가 아닌 외부로부터 주어졌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 길이 더 나을까, 저 길이 더 나을까? 이 길이 덜 험난할까, 저 길이 덜 험난할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결정이 어려울수록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밖에서 주어졌듯 결정 역시 사태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내려지기를 기다린다. 물론 최종 결정은 내 몫이지만 그 범위가 최소한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내성적으로 보이는 안연이 『장자』 「인간세」에서는 위(衛)나라 병폐를 바로잡으러 가겠다는 의욕에 사로잡힌 인물로 등장한다. 헛된 시도일 뿐 아니라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길이라고 만류하는 스승 앞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고 나름의 대책을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공자는 그 대책이라는 것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확인시키며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 이르도록 심재(心齋) 즉, 마음을 재계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경지에서 부득이(不得已)에 깃들기를 충고하며 “날개가 있어서 난다는 말은 들었겠지만 날개가 없으면서도 난다는 말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더한다.
날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 상식인데 공자는 날개라는 방편을 버리고 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판단과 예측으로 앞날을 헤아려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이를 버릴 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사숙고하여 가장 나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결국 주관적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을 재계한 사람에게는 주관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의적 판단에 기대는 대신 어떤 것을 선택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면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둘 뿐이다. 결정은 내가 아닌 외부 상황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밖에서 결정되지는 않는다. 내가 관여해야만 하는 부득이한 순간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때는 포정의 미세한 칼놀림처럼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장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나를 잊는 것이다. 주관적 판단과 의지를 모두 버리고 내가 사라질 때 비로소 내게 가장 적합한 길이 열리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졌듯이 결정 역시 최대한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회피의 태도를 장자에 기대어 변명해 보려는 설이 너무 길었다. 소심한 회피에서 벗어나 장자가 그리는 역설적 자유에서 편안히 노닐 수 있는 경지는 여전히 멀고도 멀다.
<출전>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집필자> 조정은/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