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聖人化性而起僞, 僞起而生禮義
<내용>
유학의 핵심은 사람을 일상적 존재에서 도덕적 존재로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 이 때문에 유학은 늘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두고 씨름했다. 사람이 어떻게 파악하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맹자가 성선을, 순자가 성악을 말했고 주자가 그 둘을 본연과 기질의 측면으로 종합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인성의 내용 자체에 주목하면 세 사람이 무슨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격렬하게 서로 공격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세 사람은 모두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것에 골몰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맹자는 성선이라고 했던 만큼 사람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재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있는 도덕적 씨앗을 크게 키우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에 도덕을 실천하는 마음 바탕을 잘 지켜서 그러한 씨앗을 키우자는 존심양성(存心養性)을 주장했다. 반면 순자는 성악이라고 했던 거칠고 변덕스러운 사람의 본성을 바꾸려면 세련되고 일관된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먼저 사람들에게 “본성대로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예상해보라”고 제안했다.
이어서 그는 그 예상이 부정적이라면 본성대로 움직일 게 아니라 본성의 방향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본성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위(僞)’라고 불렀다. 그가 이 개념을 만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위(僞)’ 자는 거짓, 속임수, 허위라고 하는 온갖 부정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 개념을 만든 순자는 ‘위(僞)’ 자를 그런 의미 맥락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는 ‘위(僞)’ 자로 본성에 없지만 본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람이 새롭게 일으켜 세워야 하는 기준, 제도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즉 글자의 구성을 보면 ‘위(僞)’ 자는 사람(人)이 무엇을 만든다(爲)는 뜻의 조합으로 되어있다. 아마 오늘날 우리가 자연에 대비해서 인위(人爲)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 인위가 순자의 ‘위(僞)’ 자의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순자는 인간의 특성과 그 변화의 전략을 맹자와 다른 방식으로 구성한다. “성인은 본성을 바꿔서 후천적 기준을 세우는데, 후천적 기준이 세워지면 그에 따라 예의가 합의에 따라 생겨나고 예의가 생겨나면 삶의 제도가 만들어진다[聖人化性而起僞, 僞起而生禮義, 禮義生而制法度].” 순자의 예의와 법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호흡할 수 있는 탄력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명청 시대에 순자의 예는 서구 근대 열강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사회 질서의 원리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맹자의 성선과 순자의 성악이라는 분류와 지식에 너무 집착해서 그들이 왜 성선과 성악을 말하려고 했는지 깊이 따져보지 않았다. 성선과 성악을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따져보면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요즘 4차 산업 혁명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에 머무르지 않고 ‘호모 데우스’라는 새로운 규정을 받고 있다. 유학의 문헌을 접하면서 성현의 진리를 묵수만 할 게 아니라 현대와 호흡할 수 있는 사상 자원을 길어내도록 해야겠다. 텍스트는 낯설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때 지금까지 말한 적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출전> : 『순자』 「성악(性惡)」
<집필자> : 신정근_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