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駉駉牡馬, 在坰之野. 思無邪, 思馬斯徂.
駉(경) 말이 살지고 큰 모양 埛(경) 아득히 먼 들판 徂(조) 말이 수레를 끌고 달려가는 것
<해석>
살찌고 커다란 수말 아득한 들판에서 논다. 아무 그릇됨 없이 말은 달려가고 있네.
<내용>
공자는 제자들에게 시와 음악을 통해 내면을 다스리고 덕성을 함양하는 것을 누차 강조했다. 사념 없이 달려가는 아름다운 말들의 이 이미지는 『시경』에 수록된 시「경(駉)」에 나오며, 공자가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시경』 전체의 내용을 한 마디로 논평하며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고 말할 때 인용한 구절이기도 하다. 이 시의 제목인 「경(駉)」은 크고 살찐 수말을 의미하고 전체 시의 내용은 임금을 태운 수레를 튼튼한 말들이 힘차게 끌고 가는 모습을 찬미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공자는 『시경』 전체의 내용을 망라하는 표현으로 들판을 달려가는 말들의 이미지를 가져왔을까?
그 이유를 추측해보기 위해 공자가 인용한 또 다른 시를 살펴보자. 『논어』 「팔일(八佾)」편에서 공자는 시 「관저(關雎)」를 논평하며 이렇게 말한다. “관저 시는 즐겁지만 지나치지 않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關雎,樂而不淫,哀而不傷].” 이 시에서는 젊은 군자가 자신의 짝이 될 아리따운 아가씨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올망졸망 마름풀을 헤치며 그리운 이를 찾아보다 밤새 잠 못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화자의 슬픔은, 결코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정도로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이 시에 대한 공자의 논평은 자신의 내면에 감정적 조화를 이루어야 함의 중요성과 연관되어 이해되어 왔다. 만일 이 시도 공자의 표현대로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시 중의 하나라면, 사특함이 없다는 말은 자유롭게 감정을 가지되 그것이 적절하게 생각과 행위와 조화를 이루는 내면의 질서 정연함과 관련지어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감정의 조화에 대해 가르칠 때 공자는 결코 그것을 억누르는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고집이 세고 단순하며 다소 감정적인 구석이 있었던 거친 야생마 같은 제자 자로(子路)를 가르칠 때도 공자는 그가 모든 감정적인 면을 억누르기보다는 자신의 성급함을 조절할 수 있도록 잠시 뒤로 물러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택한다. 공자의 이런 교육 방침은 아무 그릇됨 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말들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그릇됨 없이 말이 달리도록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그 말을 잘 길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그 말의 감정이나 특유의 기질을 모두 억압하는 식으로 학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들이 있어야 우리는 미래에 주어질 기쁨이라는 보상을 추구하기도 하고 자신을 슬프게 만드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감정을 갖는 것이 올바른 행동의 바탕이 된다고 여겼다.
아득한 들판에서 자연스럽게 뛰어다니되 적절한 방향으로 사념 없이 달려가는 말들의 이미지는 우리의 내면의 수양은 본연의 감정이나 개인적 성향들을 단순히 억누르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적절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드는 방식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출전>: 『시경』 「경(駉)」
<집필자>: 문소영 / 성균관대학교 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