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必死則生, 必生則死.
必(필) 반드시, 꼭, 틀림없이 死(사) 죽다, 목숨을 걸다 則(즉) 곧 만일 ~이라면, 生(생) 살다
<해석>
반드시 죽을 각오로 싸우면 곧 살 것이오,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죽는다.
<내용>
경상남도 통영시 이순신공원(구 한산대첩기념공원) 기념비에 새겨진 “필사즉생, 필생즉사”는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을 때, 이순신이 1597년 9월 단13척의 아군 전함으로 왜적의 133척과 맞서 싸우던 명량해협에서 한 유명한 말이다. 바다를 꽉 메우고 벌려선 133척 적선의 위용에 위축된 아군의 사기를 돋우고, 이순신 자신이 솔선수범 앞으로 진격해 갈 때 외친 구절이라고 한다.
이미 전쟁에 임했을 때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만 승리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전장에서 인간의 생명은 싸우는 자와 이기는 자에게만 유의미한 것이라는 점이 몹시 유감이다. 말없는 죽음은 오로지 산 자의 처분에 따라 가치나 의미가 새겨질 뿐이다. 죽을 각오로 싸운 이순신 역시 바로 이 명량해전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고달픈 이생과 이별했다. 우리 아군은 이순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않은 채, 오로지 죽을 각오로 싸워서 결국 왜적을 차단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오기(吳起)가 『오자병법』에서 말했듯이, 무릇 전장은 늘 산 사람을 시체로 만드는 곳이다.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요행으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곧 죽는[吳子曰: 凡兵戰之場, 立屍之地, 必死則生, 幸生則死], 이른바 ‘필사즉생, 행생즉사’의 살벌한 무대인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나 남북간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1953년의 전정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미래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 무엇보다 안심이다. 다음날 4월 28일은 때마침 이순신 탄생 473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이순신이 임란 때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던 통영에서 <승전무(勝戰舞)>(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보존회 회원들이 모두 광화문으로 올라와서 이순신 동상 앞에서 50여년 갈고 닦은 <승전무>를 바쳤다. 유례없던 일들로 2018년 4월이 더욱 화려했다.
우리시대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만 한다. 나의 아들들, 우리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개죽음을 각오해야하는 일은 반드시 없도록 해야 한다. 죽을 각오로 싸우라고 말하는 『오자병법』은 사실 전쟁의 사전 준비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특징이 있다. ‘인화(人和)’를 역설하여 ‘군주와 백성, 장수와 병사 간의 인간적 유대감을 부국강병의 요체’로 여겼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 아들들이 군대를 회피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이유를 우리 모두 돌아봐야함을 시사한다. 인화로 시작하는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소망한다.
<출전>: 『亂中日記』
<집필자>: 이종숙 / 한국전통악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