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形者易壞, 無形者難滅.
易(이) 쉽다 壞(괴) 무너지다 難(난) 어렵다 滅(멸) 멸망하다, 없어지다
<해석>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다.
<내용>
세상에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은 생겨나면 시간의 장단은 있겠지만 결국 사라지는 것이 이치다. 높은 지위에 올라 세상을 위해 일도 해보고, 학우들과 함께 학문도 하고, 하늘같은 임금의 총애도 받았지만,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시대적 상황에 휘말려 낯선 땅에서 19년 동안 유배를 살았다. 앞길이 창창하던 그의 앞에 닥친 엄청난 고난 앞에서도 그는 자신을 지켰고, 자신이 할 바를 생각했고, 몸을 일으켜 자신이 할 일을 해나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식 교육이었는데, 다산은 꾹꾹 눌러쓰듯 꼼꼼하게 멀리서 자식을 가르쳤다. 어쩌면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을 이 문장의 뒷부분은 다산이 하고자 했던 말의 진의가 더욱 잘 드러난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아 없어질 수밖에 없고,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남들에게 베푸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形享以形, 期於敝壞, 神享以無形, 不受變滅也].”
다산이 볼 때, 진정한 소유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형태 있는 재물이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가운데 느끼는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하지만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옷을 사는데 늘 입을 옷은 없다. 맛있는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먹고 싶고, 집은 크면 클수록 좋아 보인다. 더 많이, 더 좋게, 더 나은 것을 찾는 일은 끝도 없다. 갖기 위해 우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지만 늘 무언가가 부족하다. 이때 쯤 되면 손에 갖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일이 생겨서 축하받을 때 ‘누구 덕분(德分)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안에 내가 잘한 것보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뜻이 담겨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들의 덕분(德分)으로 살아간다. 온전하게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함께 나누며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재물이 있건 없건 의리는 살아있고, 재물이 있건 없건 사랑이 여전하다면 이는 형태 없는 것들을 아주 잘 나눈 덕일 것이다.
나누고 베푸는 것이 단지 재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저 세상에는 온전하게 ‘내 것’이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 한 자락만으로도 조금씩 다른 모양들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출전> : 여유당전집(與猶堂全集) 문집 제48권 「가계(家誡)」
<집필자> : 이애란 /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