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飽而知人之餓, 溫而知人之寒, 逸而知人之勞
飽(포) 배부르다, 餓 (아) 굶주리다, 溫(온) 따뜻하다, 寒(한) 차다, 逸(일) 편안하다, 勞(노) 수고롭다
<해석>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이 배고플 것을 알고, 따뜻하면 다른 사람이 추울 것을 알고, 편안하면 다른 사람이 고될 줄 안다.
<내용>
엄동설한에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고통 받고 있었다. 이즈음 제나라 경공은 따뜻한 모피를 두르고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매일매일 연회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하 안영이 온몸에 눈을 뒤집어쓰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경공이 “눈이 며칠씩 내리는데도 나는 추운 줄을 모르겠구나”라며 태연하게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안영은 “옛날의 어진 임금은 자신이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내더라도 다른 사람이 춥고 배고프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앉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군요”라고 직언을 했다.
군주라면 백성의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도 오히려 그것에는 관심조차 없고 혼자 연회를 즐기거나, 바로 눈앞에 헐벗고 굶주린 이가 서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본인 처지만 내세우니,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영이 위험을 무릎 쓰고 직언을 한 것이다. 당시는 신분제 사회였고 군주의 언행은 불가침의 절대적인 것이었다고 여겨졌을 터이지만 그 앞에서 안영은 나라를 이끄는 군주의 책임과 덕목을 제시하며 백성을 굽어 살필 것을 요구했다. 이처럼 2000여 년 전의 봉건사회에서도 지도자의 최소한의 자격은 요구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권력을 남용하고 공공의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자격 미달 지도자의 뉴스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고위 공직자가 사회적 약자인 척 감수성을 언급하고, 정당 정치인이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노동자, 서민의 정치를 하려 했다는 것이 이례적인 뉴스가 되는 현실은 현대사회 지도자의 전반적인 자질이 아직 수준미달임을 방증한다. 더 나아가 무자격자들은 한술 더 떠서 안영처럼 직언하는 이들을 공권력으로 탄압하고 미디어와 사이비 여론을 이용해서 매도하기까지 한다. 추운 날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한 차림으로 호화로운 음식을 즐기는 현대판 제나라 경공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선한 군주가 나타나서 춥고 배고픈 백성을 동정하기를 바라고 있어야 할까? 지금은 군주사회가 아니다. 자격미달의 지도자가 개인의 소유로 착각하는 권력, 자산은 모두 공공의 것이다. 사회적 결정을 하는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는 이는 공공성을 자각해야 한다. 공공재를 생산하고 권력의 근원이 되는 주권자는 공공의 권력과 자산이 합당하게 행사되고 향유되도록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도자의 자격을 표현한 안영의 말은 오늘날엔 이렇게 바뀔 것이다. “예전의 어진 임금은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이 배고플 것을 알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임금이 따로 있지 않다. 어느 누구도 혼자만 배부르거나 따뜻하게 지내지 않는다. 누구나 합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쉰다.”
<출전> :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간상(諫上)」
<집필자> 송인재/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