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聖人復起, 不易吾言矣.
復(부): 다시 起(기): 일어나다 易(역): 바꾸다, 뜯어고치다 吾(오): 나
<해석>
성인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나의 말을 바꾸지 못하리라.
<내용>
동아시아 철학은 오경(五經)의 의미를 이해하고 주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공자를 비롯하여 제자백가는 자신이 창작의 주체라고 생각하기보다 전래의 지식을 터득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논어』를 비롯한 초기 문헌은 학생이 스승에 질문을 하는 문답체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시간이 좀 지나서『순자』에 이르러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이때에도 자신의 생각이 타당하다는 이유를 제시할 때『시경』을 비롯한 오경의 문헌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절을 인용했다. 이러한 철학의 형식에 주목하면 결국 동아시아의 고대 철학은 새로운 것이 없고 기존에 있었던 내용을 되풀이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철학을 부분적으로 이해한 것이지 전면적으로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시대와 상황이 달라지면 같은 내용은 다른 언어로 쓰이게 되고 사상가는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주장을 내놓기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맹자의 발언을 생각해보자. 성인(聖人)은 춘추전국시대만이 아니라 근대 이전 또는 현대에까지 사상 문화의 권위를 인정받는 거룩한 인물이다. 하지만 맹자는 감히 성인의 권위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성인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말을 뒤집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선언은 결국 자신의 주장,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맹자는 과거로부터 전승되어온 교조를 배우는 학습의 과정을 거치지만 또 과거의 교조에서 말하지 않는 주장을 과감하게 내세우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맹자의 “성인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나의 말을 바꾸지 못하리라.”는 발언은 후대에 새로운 주장을 하려는 많은 사상가들의 글에 반복해서 나타났다. 주희, 왕양명, 이이 등도 이 구절을 예시하며 각자 자신이 깊은 사유와 치밀한 추론 끝에 도달한 진리를 선언했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 철학은 주석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학문의 방식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창의적인 사고를 끊임없이 담아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제를 제출하고 논문을 쓰면서 짜깁기니 표절의 혐의를 받지 않으려는 소극적 태도를 벗어나 아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내 목소리를 내는 적극적 태도를 드러내야 한다. 이때 우리는 맹자의 “성인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나의 말을 바꾸지 못하리라.”라는 말에서 굳건한 용기를 배울 수 있다. 맹자는 바로 이러한 용기로 인해 그 이전에 부분적으로 논의되던 마음을 철학으로 끌어들여 ‘마음의 철학’을 연구하는 닻을 올리게 되었다.
<출전> 『맹자(孟子)』「등문공(滕文公)」하(下)9
<집필자> 신정근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