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惡(오): 미워하다 鮮(선): 드물다
<해석>
좋아하면서도 나쁜 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아름다운 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내용>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단점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심지어 잘못마저 예뻐 보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싫어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싫어진다. 장점이 있더라도 외면하는 것이 보통이다. 마음이 치우치면서 객관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좋고 싫음, 사랑과 미움 같은 감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대학』「전8장」은 “사람은 친하고 사랑하는 데서 편벽되며,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데서 편벽되며, 두렵고 공경하는 데서 편벽되며,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데에서 편벽되며, 오만하고 게으른 데에서 편벽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편벽되지만 “좋아하면서도 나쁜 점을 살필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아름다운 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정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감정을 갖게 되고 그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정 대상에게 호불호의 마음을 갖는 것도 부득이하다. 다만, 우리는 이 같은 인간의 특성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감정에 치우쳐서 사람을 잘못 판단할 수 있고,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다.
이는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통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잘못이 있어도 덮어주고 오판을 내려도 합리화한다. 내부의 문제점도 직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다. 어떻게든 잘못을 끄집어내어 확대 해석하고, 장점이나 좋은 점은 무시한다. 그러다보면 이쪽은 무조건 옳고 저쪽은 무조건 그르다는 도식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양자의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일찍이 영조는 붕당에 대해 “만약 좋아하면서도 나쁜 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아름다운 면을 안다면 어찌 당습(黨習)이 있겠는가?”(『영조실록』 36년 11월 1일)라고 하였다. 자기편의 단점을 알고 상대편의 장점을 안다면 대립할지언정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학』의 가르침을 지켜 노력한다면 최소한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출전> : 『대학(大學)』「전8장(傳八章)」
<집필자> : 김준태 / 성균관대 유학대학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