殺己以存天下. 是殺己以利天下.
殺(살): 죽이다, 存(존): 보존하다
<해석>
자기를 죽여 천하를 보전시킨다면 그것이 자기를 죽여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내용>
전국시대 맹자는 이런 말을 했다. “양주는 하나의 털을 뽑아서 천하(天下)가 이롭게 되더라도 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묵적은 정수리부터 발뒤꿈치까지 모두 닳아 없어진다 해도 그것이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한다고 했다.” 또 “천하의 말이 양주(楊朱)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墨翟)에게 돌아간다.”라는 말도 남겼다. 양주와 묵적의 무리는 유가(儒家)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며 당시 세상의 담론을 주도하는 논객이었던 맹자에게 가장 커다란 논적이었다. 그리고 양주와 묵적에 대한 맹자의 이러한 비판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학술적 논의가 진행되었다. 맹자의 말을 통해 우리는 당시 묵가 학파가 상당히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묵적을 대표로 하는 묵가(墨家)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세상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헌신’과 ‘희생’의 정신이다.
현대인들은 묵가 학단의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중국의 예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강조하는 정신이 말하기는 쉬울지 모르겠지만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희생이란 단어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함해서 재산이나 명예, 그리고 작게는 노동이나 시간을 바치는 것을 말하며, 때에 따라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포기하는 일일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나 공공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내어주는 행위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마음이 동하면 ‘그까짓 것’하면서 해버릴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묵자는 이로움을 말할 때 항상 의(義)를 함께 언급한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공허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이로움을 베푸는 것이고 ‘의’의 실천은 묵가집단의 최고 강령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목한 현실은 권력자들의 야망에 찬 통일의 기획이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이었다. 권력자들의 욕심과 열국간의 경쟁 속에서 백성들은 가난과 폭력에 시달렸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현실은 확대 재생산되자, 묵가는 이를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파악하였다. 그는 가난하여 굶주리고 힘이 없어 폭력 앞에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던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의로움이라 주장했고, 이에 대한 실천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을 꾀하고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외쳤다.
고난으로 가득 찼던 우리의 근현대사는 수없이 많은 묵자를 탄생시켰다. 낡은 사회구조의 핍박과 외세의 수탈에 항거했던 민중의 봉기로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 민족의 항거, 군부독재에 맞섰던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우리가 딛고 서있는 지금의 현실이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흘렸을 피와 눈물과 땀의 대가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이 처했던 각각의 삶 속에서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지금은 목숨을 결단해야하는 상황이 요구되는 사회도 아니고 남을 위한 희생이 강요되는 시대도 아니다. 그렇지만 더불어 살기 위해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바친 그분들의 노력과 마음만은 기억하고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묵자는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도우며 힘이 되어 줄 때, 서로 믿고 의지하며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역사의 어두운 곳을 지날 때마다 거듭 태어났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도 그 빛을 발할 것이다.
출전 『묵자(墨子)』 「대취(大取)」
금종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