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超以象外 得其環中 持之匪强 來之無窮
環(환) : 고리, 두르다, 선회하다(旋回), 두루 미치다
<해석>
형상 밖으로 초월하여 자유로운 변화의 묘리[道]를 얻으니, 웅혼을 가져도 억지스럽지 않고 그것을 불러와도 끝이 없다.
<내용>
요즘 모든 분야에서 ‘상상력’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심지어 첨단과학인 IT 분야에서도 조차 상상력은 필수 동력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상상력을 동아시아 미학의 주요개념인 ‘의경(意境)’으로 현대의 예술작품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의경이란 보는 이의 사상과 감정이 대상을 만나 융합하면서 생성되는 의미 또는 형상이다. 그 특징은 묘사가 회화적이고 의미가 풍부하며 독자의 연상과 상상을 불러 일으켜 구체적 형상을 넘어선 과대한 예술적 공간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즉 형상 너머의 형상[象外之象]을 보고, 형상 너머의 의미[象外之意]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의 특정 이미지의 직접성과 유한성을 깨트리고 넘어서는 것으로, 직접적인 것으로부터 간접적인 것으로 눈을 돌려, 유한으로부터 무한을 찾아 나서도록 이끌어 가는 개념이다. 의경은 곧 객관 사물의 ‘형상[象]’과 작품 속에서 특정한 예술 형상으로 표현되는‘象’에 비해 훨씬 풍부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볼 수 있다. 1917년 매장에서 파는 기성품인 남성용 변기를 가져다 놓고, 사인을 한 다음 <샘>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 시대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이라 전시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뒤샹은 예술의 상업주의에 대해 비판하였고 그에게 예술이란 먹고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 세계의 발로로서 즐거움과 기쁨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뒤샹은 이 작품을 통해 형상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정신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는 근대 예술의 길을 개척한 것으로 인정받았고, 또 기존 예술의 개념을 확대하여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것으로 이름이 높다.
또 최근에는 뉴욕의 명소로 떠오른 건축물인 ‘베슬(Vessel)’도 의경을 통한 상상력으로 성공한 예로 들 수 있다. ‘베슬’은 2500개 계단이 얽혀 벌집을 연상시키는 15층 규모의 거대한 나선형 계단 구조물이다. 그것은 인도에서 건기에 대비하는 물 저장장치인 바오리(baori)의 나선형 우물 계단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건축물은 여러 언론에서 엄청난 돈을 낭비한 ‘목적지가 없는 계단’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설계자인 디자이너 토머스 에더윅은 세간의 비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최종 판단은 시민들 몫”이라며 작업을 진행했다.
'Vassel'의 뜻은 일반적으로 ‘대형선박’이지만 또한 물을 담는 ‘용기’와 나무들의 수액을 실어 나르는 ‘도관’의 의미도 있다. 때문에 작가는 비오리의 나선형 계단에서 ‘베슬’의 의미를 새롭게 상상하여 구현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마치 벌집을 연상시키는 형태인데, 그 모습은 큰 배 같기도 하고, 물 담는 오지항아리 같기도 하며, 구조적으로는 도관과도 같다. 지상에서 계단을 빙글 빙글 돌아 올라가며 사방에서 맨해튼과 허드슨강의 전경을 볼 수 있도록 그의 상상력을 건물에 새롭게 펼쳐 놓았다. 뉴욕의 허드슨 강변은 철도 정비창과 차량기지로 쓰였던 잡초가 무성한 버려진 땅이었으나, ‘베슬’ 덕분에 현재는 사람들이 뉴욕에 가면 꼭 들리는 명소로 바뀌었다.
뒤샹은 변기를 보고 ‘샘’을 연상하였고, 토마스 에더윅은 바오리의 물과 나선형 계단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담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는 형상 너머의 형상[象外之象]을 보고, 형상 너머의 의미[象外之意]를 표현하는 의경(意境)의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출전> : 사공도, 『시품(詩品)』 「雄渾(웅혼)」
안호숙 / 갤러리 향원재 관장, (사)인문예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