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素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
素(소): 까닭 없이 隱(은): 숨어있다, 구석지다 怪(괴): 이상하다, 述(술): 말하다, 일컫다 弗(불): 아니다
<해석>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주장을 찾아내고 납득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길을 버젓이 실행하여 그것으로 후세에 칭찬받고 기리는 대상이 된다고 한다. 나는 이런 짓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중용’하면 뭔가 고즈넉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명상하는 장면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이것은 넓게는 동양철학, 좁게는 중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이미지이다. 『중용』을 들추기만 해도 그러한 이미지가 책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오해에서 생긴 이미지가 『중용』을 괴상한 책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중용』은 전쟁에 공을 세워 벼락출세를 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욕망을 이룰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런 측면에서 『중용』에서는 먼저 사람들이 무엇을 찾아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진단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변론가들은 돈이 된다고 하면 정의나 도리는 팽개치고 그때마나 입장을 바꾸고 논리를 세워서 이기는 게임에 몰두했다. 또 자객들은 자신이 마음을 준 사람이라면 온갖 모욕과 위험을 무릅쓰면서 희생을 하더라도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중용』에서는 이를 극단을 향해 치닫는 고위험의 삶으로 보았다.
그것이 바로 “듣고 보도 못한 해괴한 주장을 찾아내고 납득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길을 버젓이 실행한다”는 소은행괴(素隱行怪)의 삶이고, 동시대의 사람들은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듯이 즐기고 후세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입에 올리며 부러워했다. 이것이 바로 후세유술(後世有述)이다. 우리도 간혹 ‘대도’니 ‘희대의 살인마’라고 하면서 엽기적 행각을 벌인 사람을 입에 올리지 않는가? 그러나 공자는 단연코 말한다. “나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불위지(吾弗爲之)이다.
공자는 ‘중용’이란 이름으로 대안적 삶을 제시한다. 잘나간다고 해서 어려웠던 지난날을 잊지 않고 출세했다고 주위사람에게 뻐기지도 갑질하지도 않고 타자를 만나도 배타적으로 대우하지 않으며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을 잘 돌아본다. 이것이 바로 유혹과 자극에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지나치지도 모라지도 않으면서 중심을 잘 잡으며 늘 겪는 일상에서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중용의 삶이다.
이렇게 보면 중용의 삶은 사람이기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기우뚱거리다가도 중심을 잡는 평범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추사 김정희도 이런 중용의 가치를 읊은 적이 있다. “가장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가장 좋은 모임이란 부부, 아들딸, 손주라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김정희가 71세 때 쓴 예서체 대련이다. 71세라면 세상에서 맛있다는 음식 다 먹어보고 세상에서 이름난 모임에 다녀보았을 터이다. 노년에 다시 돌이켜보니 늘 곁에 두고 먹는 일상의 소박한 음식이야말로 가장 맛있고 아무런 긴장 없이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좋은 만남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발견이다.
<출전> 『中庸(중용)』
<집필자> 신정근 / 성균관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