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을 좋아하듯이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 신정근
- 조회수10783
- 2005-01-04
우리는 교정을 거닐다가 잘 생긴 사람을 보면 다시 쳐다보게 된다. 한 번으로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상대가 눈치채지 않게끔 슬쩍 보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어야 한다. 요즘에는 이런 다시 보기가 집요하고도 상대가 불편할 정도가 되면 애정이 아니라 성희롱이 된다. 色하면 여러 ?米怜?든 크레파스의 색깔을 떠올린다. 원래 채(采)가 이런 뜻으로 쓰였다.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에서 色은 스킨쉽을 하듯이 가까이 다가서 있는 두 사람을 본 떤 글자이다. 즉 색은 성적 매력이 있는 사람(여자)을 나타냈다. 차츰 색은 얼굴색, 표정, 외적 성질의 뜻으로 쓰였지만 불교 언어의 영향으로 사물 일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봄날의 개나리도 우리의 시선을 끌만큼 충분히 일정한 꼴을 갖추고 있고 나름의 빛깔을 띠고 있지 않는가?
미인이나 개나리는 우리더러 자신을 봐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보지 않는다고 눈을 흘기지도 않는다. 어떠한 강제나 위협이 없는데 나의 눈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이것은 억지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가 선용, 자기 계발, 문화 활동, 도덕적 삶처럼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영역이 있다. 자기 계발의 필요성에 충분히 동의하더라도 시간 내서 어학을 공부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우리는 사랑의 가치에 수긍을 하면서도 그 이유를 찾는다. 현실에서 이 추궁 작업은 사랑을 더 잘하기 위해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을 정당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실망의 표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대한 안타까운 토로이다. 우리가 현재의 나(what I am)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고 미래의 나(what I will be)를 행복하고 긴장되게 맞이하려면 그 한계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고 어려운 걸음을 내딛어봐야겠다. 걸음을 걷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애초의 주저함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 줄어듦이 바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과정이다. 즉 도덕의 자연화가 일어난다. 세밑의 길을 걷다 빨간 냄비를 만나면 당신은 어쩌겠습니까?
[如(여) : …처럼 하다. 色(색) : 미인]
# 출전 : 『논어』「자한」
# 내용소개 : 신정근(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