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은 정직으로 갚고, 은혜는 은?熏?갚는다.
- 윤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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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10
『논어』에서 어떤 이가 공자에게 “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은혜는 무엇을 갚을 것인가? 원한은 정직으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는 것이다.” 정직이란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유가에서 보면 마땅히 미워해야 할 것은 미워해야 하며,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은 사랑해야 한다. 맹자의 사단(四端)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자신의 잘못은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은 미워하는 마음”이며, 이것을 확충시켜 드러나는 것이 의(義)라는 덕이다.
현실사회에서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든 가식적인 것이든 ‘사랑’이라는 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있다. 기독교에서의 ‘박애’와 같은 종교적 이념에서 보면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마땅히 미워할 것에 대해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망설이고 묵인하는 경우가 보통이고 심지어 그것이 ‘현명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덕보원(以德報怨)”이라는 말은 『노자』에도 보이는 말이다. 그런데 노자의 ‘도·덕’ 개념은 유가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있다. 유가의 도덕은 인륜 중심의 내용인 데 비해 노자의 그것은 인간을 포괄한 자연의 층차에서 사용된다. 여기서 ‘덕’은 유가에서처럼 인간관계 사이의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자연적 특성, 혹은 기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을 노자식으로 해석한다면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원한을 갚는다”는 뜻이 된다.
유가적인 ‘사랑’은 무차별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천, 상제)을 구분하고, 인간관계 중에서도 부자·형제·부부의 가족 규범을 최우선으로 한다. 또한 부모를 사랑(親親)한 다음에 일반 사람을 사랑(仁民)하며, 이것이 사물을 사랑(愛物)하는 데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내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은 허위의식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의 어른을 어른으로 공경한 다음에 다른 어른을 공경할 수 있고, 나의 어린애를 보살핀 다음에 남의 어린애를 보살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報(보) : 보답. 怨(원) : 원망.]
# 출전 : 『논어』 「헌문」
# 내용소개 : 윤무학(성균관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