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이 문채보다 나으면 투박하고 문채가 바탕보다 나으면 호화롭기 때문에 문채와 바탕이 잘 어울린 이후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
- 김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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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25
문채란 사물의 바탕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바탕은 내용을 말하고 문채는 형식을 말한다. 사물의 바탕을 표현하는 문채란 문화와 학술 등의 범주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광의의 개념이다. 바탕과 문채와 잘 어울린다는 것은 내용과 형식이 화해의 통일에 도달한 정점을 형용하는 말이다. 내용과 형식, 즉 바탕과 문채가 조화롭지 못하면 비루하고 거친 야만인처럼 투박하거나 내용에 비해 형식을 과장하는 사관(史官)과 같다. 따라서 군자란 문과 질을 겸비하고 내용과 형식을 통일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물을 지칭한다.
내용과 형식이 통일된 군자의 경지? 참 어렵게만 느껴지면서도, 요즘과 같이 상이한 가치들이 난립하고 신구 세력간의 대립적 상황이 극명하게 연출되는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절실하게 생각해봄직한 이상적 인간상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과거나 미래의 역사는 항상 그러했고 그러할 것이다. 필자가 몇 년 전 사람들에게 들은 우스개 소리를 하나 소개한다. 이집트 고고문자만을 연구하는 유럽의 한 학자가 어느 날 5000여 년 전의 이집트 토판을 발견하고 2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토판에 쓰여 진 문자를 해독하였는데 그 내용인즉슨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우리 주위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이러한 예를 통해 신세대에 대한 도덕적 차원의 엄격한 정의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50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사회상황의 변화에 따라 신·구세대간 의식의 차이는 존재하였고 어느 시대에나 기성세대들의 사고와 행위 양식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모범적이지 못한 젊은 군자들이 있어왔다. 바탕이 변하면 문채 또한 상응하여 통일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진(陳)과 채(蔡)의 국경사이에 곤궁에 처해 있을 때, 공자는 왜 돌출적인 젊은이들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그들의 에너지를 사랑하고 그들과 흔쾌하게 행동을 같이 하였는가?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을 헤쳐 나갈 버릇없는 젊은 애들, 아니 젊은 군자에 대한 공자의 믿음 ―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바탕과 문채를 통일하려는 군자적인 수양의 결과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란 변화하는 시공간적인 바탕의 흐름과 상응하면서 문채 있는 분석을 시도한 버릇없는 젊은 군자들의 존재의 연쇄이자 계속되는 바탕과 문채, 내용과 형식의 화해과정이다.
# 質(질) : 바탕, 彬(빈) : 빛나고 뚜렷하다.
# 출전 : 『논어』「옹야」
# 내용소개 : 김예호(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