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되 지나치지 않게, 슬프되 상처입지 않게!
- 전광진
- 조회수11526
- 2005-03-28
꾸안꾸안! 물수리는 關關雎鳩 [관관저구]
황하 섬 가운데서 울고요 在河之洲 [재하지주]
아리따운 아씨는 窈窕淑女 [요조숙녀]
대장부의 좋은 짝이로세! 君子好逑 [군자호구]
위의 시는 약3천년 전에 나온 중국 최초 시집인 『시경』에 실린 300 여 편 가운데 첫 편인 (關雎·관저)의 첫단락이다. ‘아리따운 아씨’(窈窕淑女·요조숙녀)를 사모하는 젊은이의 연정을 담고 있다. 일찍이 이 시를 읽은 공자님은 “관저 편의 시는 즐겁되 지나침이 없고, 애처롭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 ≪논어≫ 편)라고 평하였다.
이 명구 가운데, ‘關雎’라는 두 글자를 뺀 나머지 여덟 글자 즉, “樂而不淫, 哀而不傷”만 두고 보면, “즐기며 살되 지나침이 없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상처를 입지는 말라!”라는 명령문이 된다. 명언이나 명구는 글자수가 적을 수록, 그리고 對句(대:구)가 될수록 더욱 좋다. 그래서 “즐겁되 지나치지 않게, 슬프되 상처입지 않게”라고 축약시켜 보았다.
하루 하루를 한결같이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즐겁게 기쁘게 사는 삶에 있어서는 사랑을 빼 놓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하는 것은 즐기는 것이?嗤? 사랑을 받는 것은 즐기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사랑은 받을 때 보다 줄 때가 좋다는 뜻이 담긴 것이지만, 사랑도 사랑 나름이어서 천차만별이 있을 수 있다. 최고의 사랑, 至善(지선)의 사랑을 지향해야지, 저급하고 음란한 사랑에 빠져서야 되겠는가! 淫(음)자는 본래 ‘물들다’(be dyed)는 뜻이었지만, 이 경우에는 ‘지나치다’(exceed) ‘넘치다’(overflow)는 뜻으로 쓰였다. “즐겁되 지나치지 않게”(樂而不淫)란 말을 마음에 꼬-옥 꼬-옥 새겨 둔다면 인생을 즐겁게 살면서도 고상한 품격을 유지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즐겁게 살고 싶어도, 우리네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 희망대로만 되질 않는다. 누구나,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크든 작든 ‘슬픔’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랬을 때 좌절하여 낙오자로 전락할 것이 아니라, 슬픔을 전화위복의 好機(호: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지혜는 바로 “슬프되 상처입지 않게”(哀而不傷)란 말에서 찾을 수 있겠다. 슬픈 일을 닥쳤더라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내는 예지와 꿋꿋한 끈기를 발휘하자. R. W. 에머슨(1803~1882)이 한 말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은 슬픔을 딛고 서고, 어떤 사람은 슬픔 밑에 깔린다”.
오늘도 즐겁고 고상한 삶, 그리고 꿋꿋하고 희망찬 삶을 비는 뜻에서 “樂而不淫, 哀而不傷”(낙이불음, 애이불상)이란 여덟 글자를 목놓아 외쳐 보노라!
[淫(음) : 물들다, 지나치다. 哀(애) : 슬프다. 傷(상) : 손상되다, 상처입다.]
# 출전 : 『논어』「팔일」
# 내용소개 : 전광진(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