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염두에 두며, 학문을 닦으며, 학문으로 쉬며, 학문으로 놀 것이니라.
- 정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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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4-07
우리는 흔히 ‘장수(藏修)’라는 용어를 만난다. 이것은 대체로 정치 현실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숨어서 몸을 닦는 것 정도로 이해된다. 옛 선비들은 엄격한 출처관에 입각하여 도(道)가 실행되면 조정으로 나아가서 자신이 그동안 쌓았던 경륜을 펼치고, 도가 실행되지 않으면 초야로 물러나 그 몸을 깨끗이 하며 지조를 지켰다. 이것을 그들의 사명으로 여겼던 것이다. ‘장수’는 바로 초야로 물러나서 몸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를 『예기』에 근거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면, 학문을 항상 마음에 두고(藏) 닦는다(修)는 것이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이것으로 쉬며(息), 이것으로 논다(遊)고 하였다. 학문은 마음에 축적해 두더라도 무겁지 않으며, 아무리 닦더라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쉴 수 있으며 또한 노닐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의식에 평화가 깃들기도 하고 높은 평정의 정신 경계가 찾아오기도 한다.
‘장수’와 ‘식유’는 이처럼 진중한 학문적 자세와 그 과정을 말한다. 이 때문에 퇴계 이황도 도산 남쪽에 서당을 고쳐 지으면서 이렇게 읊지 않았던가? “계당에 비바람 부니 침상조차 가리지 못하고(風雨溪堂不庇床), 거처를 옮기려고 빼어난 곳 구하여 숲과 언덕을 찾아다녔네(卜遷求勝徧林岡), 어찌 알았으리? 평생토록 염두에 두고 학문을 닦을 곳이(那知百歲藏修地), 바로 평소에 나무하고 고기 낚던 그 곳이었다는 것을(只在平生采釣傍).” 이처럼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으면서 그곳을 ‘장수’하고 ‘식유’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가수 현철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중가요가 으레 그렇듯이 이것은 떠나가 버린 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다. 학문을 향한 자세야 말로 이러해야 할 것이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그것을 생각하며 갈고 닦으며, 또한 그와 함께 쉬고 그와 함께 놀아야 한다. 학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그것으로 행복한 사람, 오늘날 그 사람이 문득 그립다.
[藏(장) : 간직하다. 遊(유): 놀다]
# 출전 : 『禮記』「學記」
# 내용소개 : 정우락(경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