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솜옷을 입고서 여우나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가죽옷을 입은 사람과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는 아마도 자로(子路)일 것이다.
- 이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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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4-21
과거에 비해 경제력과 인권의 향상으로 부(富)와 귀(貴)를 소유한 이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때문에 마음이 억센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많은 부귀를 소유한 사람들을 해치고서라도 그들의 부와 귀를 자신이 차지하고 싶어 하며,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부귀한 이에게 빌붙어서라도 그 부귀의 작은 부분이나마 받기를 원한다. 이렇게 본다면 부귀의 불균형은 분배 그 자체의 불평등적인 요소보다는, 각 개인이 느끼는 박탈감과 그것을 더 얻고자 하는 심리 상태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귀를 얻기 위하여 모두가 맹렬하게 질주하는 만큼,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어느 정도 남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빌붙는다 할지라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귀를 얻기 위해 이렇게 사는 것이 천성에 맞는다면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 이런 사람들도 자신의 적성에 부합하는 나름의 방법들을 가지고 부와 귀를 마주할 것이지만, 좋은 방법 중의 하나로 자신의 정신을 집중시킬 대상 혹은 목표를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이러한 대상과 목표를 향해 매진할 때 부와 귀가 따라온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혹 부귀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신의 집중을 통한 일로매진은 그 나름의 삶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성취감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은 바로 삶의 피로를 씻어줄 단비가 될 것이며, 이 단비의 세례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윤택해질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남의 부귀를 지나치게 부러워한다거나 그 주변에서 한없이 위축되는 자아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 최상의 가치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삶을 실천하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삶을 살아간 사람을 보면 왠지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논어』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허름한 옷을 입고 부귀한 이와 서 있으면서도 위축되지 않는 당당한 자로(子路)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인가 보다.
[弊(폐):낡다. 縕(온):헌 솜. 袍(포):솜 옷.狐(호):여우. 貉(학):담비]
# 출전 : 『논어』「자한」
# 내용소개 : 이영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