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 곳에서 그 머물 바를 알아야 한다.
- 정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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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5-27
『시경』에 ‘꾸룩 꾸룩 우는 황조여! 깊은 산 울창한 숲 속에서 머물며 사는구나.’라는 말이 있다. 공자는 이 구절을 두고 ‘머물 곳에서 그 머물 바??알아야 한다. 사람이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새는 깊은 산 울창한 숲 속에 머물며 거기서 자신의 마땅한 삶을 영위한다. 이처럼 사람도 자신의 위치에 머물면서 자신의 마땅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공자는 지금 ‘사람이 새만도 못해서야!’ 라며 혀를 차고 있는 것이다.
‘머물 곳’이란 각자의 위치를 말하며, ‘머물 바’란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를 말한다. 일찍이 공자는 『논어』에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 父父子子)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임금은 어짊에 머물고(爲人君 止於仁), 신하는 공경에 머물며(爲人臣 止於敬), 자식은 효도에 머물고(爲人子 止於孝), 아버지는 자애로움에 머문다(爲人父 止於慈)’는 『대학』적 풀이를 할 수 있다. ‘머문다’는 것은 결국 머물러 ‘지극하다’는 것이다. 군주의 지극한 어짊, 신하의 지극한 공경, 자식의 지극한 효도, 아버지의 지극한 자애, 이것은 바로 이들을 더욱 이들 ‘답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다움’이 결핍된 세상에서 산다.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청소년들의 학교 폭력, 정치인의 뇌물수수, 교수의 성희롱, 자녀의 부모학대, 부모의 자녀유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정과 부패, 혹은 비리와 패륜들. 이것으로 우리는 우울하다. 어디서 어짊(仁)과 공경(敬)을 찾을 것이며, 또한 효도(孝)와 자애(慈)를 찾을 것인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는 무너지고, 본성이 선하다는 맹자의 성선설은 거짓인 듯하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된 사회, 그 사회에서는 스승은 스승의 자리에서 머물고, 제자는 제자의 자리에서 머문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자식과 부모는 모두 자신의 자리에 머물며 그들의 도리를 다한다. 자신의 자리에 머물며 타인을 향하여 도리를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 아닐 수 없다.
# 출전 : 『大學』
# 내용소개 : 정우락(경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