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사람을 기르기 위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 이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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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9-26
전국시대 약소국인 등나라는 강대국인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등나라 군주인 문공(文公)에게는 고민이 많다. 주변의 큰 나라를 섬겨도 전란을 피할 길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마침 맹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맹자는 옛날 주(周)나라 초창기 태왕(太王)이 이민족의 압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나라를 이민족에게 주고 떠났던 예를 들면서 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나라의 영토인 토지라는 것은 그 목적이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인데 그 토지 때문에 전쟁을 해서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태왕의 이러한 행동에 감복한 백성들이 왕을 따라 함께 기(岐) 땅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가 등나라 ??貶“?이야기해 준 대처방법이 지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허탈한 무대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적이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강대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침략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전혀 근거 없는 대책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차라리 나라를 과감하게 강대국에 넘겨주고 자기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처럼 강대국에게 나라를 넘겨 버린다는 것은 현대의 국가 개념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내용이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정치 혹은 국가 통치에서 우선시되어야할 점인가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국민의 안전과 복리가 최우선 목적인데도 오히려 그 수단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여 그 때문에 역으로 원래의 목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맹자의 언급은 냉정하면서도 진솔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 출전 : 『맹자』, 「양혜왕」
# 내용소개 : 이강재(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