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한다.
- 윤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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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0-04
자로가 공자를 수행하여 위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 정치를 담당한다면 무엇부터 하시겠는가 물었다. 공자는 名(명분, 명칭)부터 바로잡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로가 한숨을 쉬면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이에 공자는 자로를 질책하면서, “명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문화)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문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한다”는 말은 오늘의 우리나라 법제도와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형벌 시행과 그것의 근거가 되는 법보다는 인간의 자발성과 그 근거가 되는 문화의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법 전문가라 하더라도 객관적 법률에만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률적 판단에도 법 전문가의 문화의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 법 전문가의 양성과정과 제도를 본다면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사실 해방 후 도입된 서구 중심의 법제도는 우리의 문화와 괴리감이 없을 수 없었다.
현재 활동중인 대통령산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는 로스쿨 및 국민사법참여제 도입, 고법상고부 설치, 법조일원화, 법조윤리 제고방안 등에 관련된 개혁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지난 50년간 유지되어온 사법제도를 근간부터 바꾸는 것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법제도와 문화가 열악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관예우’니 ‘고시낭인’ 등의 용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대다수 국민들이 사법부와 법제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유쾌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정치지도자들이 즐겨 쓰는 ’법과 원칙‘이라는 말 자체 또한 국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객관적인 법이 사람보다 우선할 수 없다. 유교에서도 형벌과 그 근거가 되는 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다만 법지상주의에 대해서 경계할 뿐이다.
[興(흥) : 일어나다. 錯(조) : 두다.]
# 출전 : 『논어』「자로」
# 내용소개 : 윤무학(성균관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