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지어내는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적다.
- 윤용남
- 조회수11187
- 2005-11-21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남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그것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며, 얼굴빛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말과 얼굴빛의 이런 기본적인 기능을 무시하고, 말을 화려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지어내??남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을 과장되게 하다보면 거짓을 말하게 되며, 얼굴빛을 남에게 좋게 보이려고 노력하면 결국은 아첨하게 된다. 이처럼 거짓과 아첨을 일삼는 사람은 어진 사람일 수 없다.
그렇다면 말을 완곡하게 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모두 거짓과 아첨이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억지로 꾸미고 지어낸 것인가 하는 것이다. 평소에 인격을 수양하여, 노력하지 않고도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즉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말을 완곡하게 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라면 교언영색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인격수양이지, 말과 얼굴빛을 듣기 좋고 보기 좋게 꾸미고 지어내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이 말은 매우 짤막하지만, 조선시대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으니, 대인관계, 군신관계, 언론정책 등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교언영색 하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직언정색(直言正色), 즉 말을 곧게 하고 얼굴빛을 엄정하게 하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친구에게는 언제나 충고를 해야 하고, 임금에게는 직간(直諫)을 해야 하고, 여론 형성에서는 말을 에두르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야 하였다. 또 상대가 잘못을 할 때는 언제나 정색을 하고 바른 말을 해야 했다.
이 한마디 말은 조선조가 500여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고, 동시에 유교를 대표하는 신념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 우리는 화술을 배우고, 표정을 관리하면서 상대에게 호감을 사는 법을 연구하지만, 자신의 인격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겉치레에 빠져들기 쉬운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巧(교) : 교묘하다, 기교. 令(영) : 좋다, 명령. 鮮(선) : 드물다, 곱다.]
# 출전 :『논어』「학이」
# 내용소개 : 윤용남(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