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술만은 양을 제한함이 없었으되 언행이 어지러운 데에는 이르지 아니하셨다.
- 이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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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03
공자는 어떤 음식도 다 양을 정해놓고 그 정량을 넘지 아니하였으나, 오직 술만은 예외였으니 참으로 애주가였던 듯하다. 그러나 언행(言行)이 어지러운 데에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그 절제함이 또한 자연스러운 경지에 이르렀던 듯하다. 한문에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이 마지막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마음껏먹지 않으면 난동을 부린다고 농담하기도 한다.
술은 예로부터 그에 대한 찬반이 극명하였다. 술은 대체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시켜 함께 어울리게 하는 기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문호인 도연명(陶淵明)이 술을 망우물(忘憂物)이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시적으로 근심을 잊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이백(李白)을 주선(酒仙)이라 하였으니 술은 문학 창작의 원동력이 됨도 알겠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술의 순기능적 역할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성왕(聖王)으로 꼽히는 우(禹) 임금은 의적(儀狄)이 만든 술을 먹어보고, "후세에 반드시 이 술로써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고서 드디어 의적을 멀리하고 맛있는 술을 끊었으며, 끝내는 "선한 말을 좋아하고 맛있는 술을 미워하는 데(好善言而惡旨酒)"에 이르렀다. 그리고 퇴계(退溪)는 〈주계(酒戒)〉에서 "아아, 술이여 / 사람에게 재앙을 끼치는 게 혹심하네 / 장을 썩게 하여 병을 일으키며 / 본성을 혼미하게 하여 덕을 잃게 하네.(嗟哉麴糱, 禍人之酷. 腐腸生疾, 迷性失德.)"하여 술을 엄히 경계하였다. 이상은 술의 역기능적 측면을 간파하고 삼간 것이라 하겠다.
어쨌든, 술을 마시되 언행이 어지러운 데 이르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요즘처럼 새롭게 출발과 만남이 어우러지는 신학기는 술을 마실 기회가 많다. 술로 인한 탈이 나지 않도록 즐기되 지나침이 없는 절제의 미덕을 지니는 것도 새로운 출발점에서 되새겨볼 점이다.
[量(양) : 분량, 헤아리다. 及(급) : 이르다. 亂(난) : 어지럽다.]
# 출전 : 『논어』「향당」
# 내용소개 : 이성호(성균관 한림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