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나의 지식을 이룬다
-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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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4-14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래 문구는 “치지는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의 교육지침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기본인 수신(修身)과 그 아래 조건으로 제시된 성의∙정심의 가장 기초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성실히 하려는 자는 반드시 격물치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뜻(마음)을 성실히 하면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되면 수신이 된다는 것이다.
주자는 성리학을 정립하면서 이 『대학』을 특별히 중시했는데, 그것은 당시 전통사상인 유교와 대항 관계에 있던 불교∙도교 및 노장사상을 극복할 방법이 이 『대학』 속에 있고, 그 핵심이 바로 이 격물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유교의 경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바로 종교적 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군주나 신하들 모두 수신이 중요한 행위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격물치지가 왜 수신의 조건이 될까?
공자가 일찍이 ‘배우는 일’을 중시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공자 사상 하면 우리는 ‘사랑[仁]’을 떠올린다. 그런데 공자는 학문의 정신에 입?▤臼?인을 말하면서 반드시 ‘지식’[知]을 말하였다. 즉 지-인 병행을 강조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자기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 공자는 인을 말하면서 여느 종교의 사랑과는 조금 다르게 말하였는데, 그 증거가 관중이라는 인물의 평에 잘 나타나 있다. 무조건 사랑이나 조그만 의리 보다 천하나 백성을 위해서 큰 의리를 취하려는 남성다운 지혜와 용기도 인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주자 성리학에서도 이 정신을 계승,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이 격물치지다. 주자학은 초목과 짐승의 이름까지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오늘날로 말하면 과학적 지식까지도 포괄했다. 그러나 유교가 도덕학이었으므로 윤리적 가치판단과 역사적 평가, 또는 오늘날의 법률적 판결과 같은 인간사에 국한되었다. 이것이 동아시아가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중요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오늘날 우수한 인재들이 고시를 통하여 정치와 법률적 판단을 내리지만, 해방 60년에 수신-치국이 여전히 부족하다. 어려운 법률용어가 민본정치를 막고 있다. 우리는 격물치지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格(격) : 탐구하다. 致(치) : 이루다.]
# 출전 : 『대학』
# 내용소개 : 이동희(계명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