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가지 못할 먼 곳이 어디 있겠는가?
- 심의용
- 조회수11272
- 2006-07-24
캐플릿가의 쥴리엣을 사랑하게 된 로미오는, 그 원수 집안의 높은 담장을 뛰어넘어 그녀를 만나러 간다. 그것은 자칫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는 감행이었다. 친구들은 사랑에 빠져 위험한 일을 감행하는 로미오를 비웃으며 놀리지만, 로미오는 오히려 그런 친구들을 안쓰러워하며 독백한다. “사랑의 상처를 입어본 적 없는 자가 쉽게 남의 상처를 비웃는 법이지.”
『논어』의 위 구절은 “아름다운 자두꽃이 봄바람에 휘날리는구나.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겠냐만 그대의 집이 멀고도 멀구나.[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라는 지금은 일실된 시 구절에 대한 공자의 평이다. 공자도 사랑을 해보았을까? 근엄한 공자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식의 현대 젊은이들과 같은 발랄한 사랑을 했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어찌 그에게도 봄바람에도 설레는 청춘의 떨림과 열정이 없었겠는가. 공자의 사랑은 ‘움직이는 사랑’이 아니라 가지 못할 곳이 없을 정도로 간절한 사랑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태도는 사랑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인간과 삶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가진 그였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知不可而爲之者與]”이라고 어느 문지기가 자로에게 공자를 조롱하듯 평했지만, 오히려 그 조롱 속에 공자의 진면목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불가능함을 안다면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처신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는, 혹은 하고자 하는 열정이 어리석음으로 폄하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를 물어야 하는지 모른다. 진정으로 간절히 원한다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을 리야 있겠는가.
혹 불가능하거나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모르거나 쉽게 비관하여 포기한 것은 아니었는가? 혹은 할 수 없거나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엄살 피우거나 해보지도 않고서 회피하고 싶은 나약함은 아니었는가? 공자를 조롱한 문지기에게 로미오의 독백을 빌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진정한 갈망을 가져보지 못한 자가 쉽게 남의 갈망을 헛되다고 비웃는 법이지.”
공자의 말 속에 담긴, 어떤 사람에 대한 간절함, 어떤 일에 대한 도저한 갈망, 그것을 이 현실 속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과 지혜, 그 투혼은 한물간 시대착오적 어리석음은 아닐 것이다. 더불어 혹 공자에게도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달려가고 싶은, 그리움에 사무치도록 사모한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까? 소인과 여자는 다루기가 어렵다고 말한 공자도 사랑의 상처에 눈물 흘린 적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思(사) : 생각, 遠(원) : 멀다.]
# 출전 : 『논어』「자한」
# 내용소개 : 심의용 (숭실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