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 황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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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20
이 말은 흔히 지조 있는 사람에 대한 예찬으로 사용됩니다. 지조(志操)란 올곧은 뜻을 굳게 잡아 흔들리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를 통해 변치 않는 지조를 빗댄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이 말에는 조급증을 경계하는 말도 숨어 있습니다. 생명체 가운데 시들지 않는 것이란 없습니다. 소나무나 잣나무도 한겨울에는 시듭니다. 다만 다른 나무의 잎사귀들이 모두 낙엽이 되어 땅에 뒹구는 그때에도 여전히 덜 시들은 상태에서 버텨내고 있을 뿐입니다. 한겨울의 찬바람을 버텨내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통이 따를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해합니다. 불 같이 일어났다가 썰물 빠지듯 또 그렇게 식어버리기 일쑤입니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있듯이 모든 일에 있어 성급하게 처리하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말 훌륭한 것은 더디게 만들어지고 또한 더디게 잊혀집니다.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잊혀지는 것들은 인내와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찬바람을 맞으며 푸르름을 간직하기 위해 소나무가 견뎌야 할 고통을 잊지 않아야 공자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이러한 인내야말로 진정한 지조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지조 있는 사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들은 크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약해지고 흔들리는 것은 인심(人心)의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지조는 과연 대나무가 휘다 못해 부러지는 것처럼 끝내 지키지 못하면 부러지고마는 그런 성질의 것일까요! 공자는 견리사의(見利思義)하고, 견위수명(見危授命)하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익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를 생각해야 하며, 위급한 ?鑽꼭?만났을 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견리사의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겠지만 견위수명은 나는 모르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높은 경지의 도덕심만을 지조로 본다든가, 변치 않는 절개로 본다면, 존경해 마지않는 지조 높은 사람이 된다거나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평생 어려울 것입니다. 조금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지조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에는 지향해야 할 공동선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랑과 평화라고 해도 좋고,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도덕성이라 해도 좋습니다. 이런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급해하거나 성급하지 않습니다. 멀리 보는 안목을 가지고, 늘 함께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꿋꿋하게 인내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조입니다.
[寒(한): 추움, 추위. 조(彫): 시듦]
# 출전: 『논어』「자한」
# 내용소개: 황병기 (연세대학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