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다.
- 이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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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13
공자 서거후 여러 제자들에 의해 편찬된 논어에는 중복된 구절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거나, 자기 자리가 아니면 나서지 말라는 등 반복된 어구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기록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공자가 평소 즐겨 쓰거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거듭 수록했을 것이다. 그 중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실제로 담당하고 있는 자리에 있지 않는다면 이러쿵 저러쿵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을 구제하려는 열망으로 가득찼던 공자와 같은 성인이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치에 간섭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을 돌면서 도덕과 예의를 바탕으로 하는 덕치(德治)의 실현을 역설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한 공자였지만 위의 구절처럼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는다면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권고 또한 빠트리지 않았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혼선만을 불러오고, 쓸데없는 참견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애정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칫 지나치면 자리에 연??構킬?자아도취에 빠지게 마련이다. 권력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점차 추한 모습으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상황에 익숙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더 넓히고 싶은 욕망을 자제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물러서야 할 때 물러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공자를 성인으로 평가하는 맹자의 기준 역시 나설 때 나서고 물러설 때 물러서는 유연하면서도 단호한 결단에서 찾고 있다. 적실한 상황판단과 책임있는 역할수행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힘을 실어주고 다같이 발전하는 계기를 가져온다.
사거리에 집 못짓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사람 저사람 간섭을 듣다보면 오히려 일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불필요한 참견을 자제하면서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 이것이 나아감과 물러남의 내공을 키워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
[位 : 위치, 지위. 謀(모) : 꾀하다, 논의하다.]
# 출전 : 『논어』「태백」
# 내용소개 : 이천승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