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냇가에서 말했다.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주야로 그침이 없도다”
- 안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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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03
정원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먼저 전원을 켜고 스위치를 TV쪽으로 옮긴 다음 채널을 4에 맞추세요!” 아무리 설명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늙은 아버지. 결국 짜증이 난 정원은 방을 나가 숨을 고른 다음 백지를 꺼내 메모를 시작한다. ‘1. 먼저 전원을 켠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했다. 사람의 죽음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도 있구나. 사람의 슬픔이 이처럼 편안히 받아들여질 수도 있네.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어떤 상황에서도 아름답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구나. 아마도 이런 감상 때문에 이 영화가 애호하는 영화 목록에 들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 전체를 바라 볼 수 있는 안목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특히 어린 시절엔 자기중심의 세상 안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보면서 살기가 십상이다. 지구는 나를 위해 자전과 공전을 하는 것이라는 허풍까지도 내심 품고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없으면 영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던 동아리와 조직, 심지어 가정에서 조차 나의 부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용함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그래 세상은 흘러가게 되어 있는 거야. 스스로 위로하며 상황을 받아들이면 좀 더 성장한 것일까.
공자는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주 작은 곳에서 발원한 물은 계곡을 흐르고 때론 폭포수로 떨어지기도 하며 평원이나 도시를 관통하기도 하면서 때와 장소에 맞는 흐름을 흐른다. 이런 물의 유연함이 바로 지혜로운 자의 핵심 덕목일 터이다.
나이를 더해 갈수록 한 해는 그만큼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그저 소비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인다는 자각도 생긴다. 한?천?멈춤이 없는 흐름의 공간 안에서 멀미 내지 않고 잘 지내려면, 그 흐름에 맞는 나의 운동이 필요하다. 생각도 몸도 흘러가는 시간을 의식하면서 그에 어울릴 수 있도록 말이다.
[逝(서) : 가다. 지나가다. 죽다. 舍(사) : 머물다. 집.]
# 출전: 『논어』 「자한편」
# 내용소개: 안은수(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