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서지 못한다.
- 심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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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22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 동시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함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논어』「안연」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가 말하였다.
“풍족한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백성의 국가에 대한 신뢰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어쩔 수 없이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합니까?” “군사력을 포기해야 한다.”
“나머지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합니까?”
“경제력을 포기해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백성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서지 못한??”
이 대화에서 공자는 정치의 핵심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국민의 신뢰. 정치를 함에 있어 경제력과 군사력은 국가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다.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하고, 외세로부터 국가를 굳건히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우선하는 보편적 가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신뢰’이다.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극단적 가정(假定) 하에서 공자는 서슴없이 국민의 신뢰를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것이다.
국가가 군사력을 잃으면 국민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고, 경제력을 잃으면 국민의 비참한 삶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지만 이런 극한에서도 국민의 신뢰가 남아있다면, 그런 국가는 시련을 극복할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외적인 여건들은 그 빛이 바래지고 만다. 최첨단 무기도 화려한 경제지표도 국민과는 무관한 허상(虛像)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순간, 막강한 군사력과 풍족한 경제력은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고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독이 될 뿐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죽느니만 못한 그런 삶을 공자는 ?÷?걱정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놀랄만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였고, 세계 10위 안에 드는 막강 군사력을 자랑한다. GNP 3만불 시대를 눈앞에 두고서 선진국 대열을 운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이다. 양적인 성장만으로 국익(國益)과 국격(國格)을 논하는 건 좀 곤란하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성장은 빈껍데기의 화려함일 뿐이다.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 될 때, 국가의 품격은 저절로 높아지게 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을 향한 위정자의 진정성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국익을 말하지만, 사실상 국민의 신뢰보다 더한 국익이 또 어디 있겠는가?
#출전: 『논어(論語)』「안연(顔淵)」
#내용소개: 심규하 (성균관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