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위로 통달한다
- 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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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26
어느 날 공자가 말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자공이 물었다. “왜 선생님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에서부터 배워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오직 하늘인가보다.”(헌문-37)
이 말은 공자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 제자에게 한 말이다. 공자는 자신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으며’ 또한 ‘낮은 수준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워 올라가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말이 상달(上達)이다.
공자는 성숙한 인격의 모범으로 군자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군자와 상대가 되는 소인에 대해 공자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공자는 소인을 하달(下達)로 설명하고 있다. 하달이란 배우면 배울수록 낮은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배움이란 본래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새로운 지식과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여 결국 자신을 수준 높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소인은 왜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낮은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무엇을 추구하고 목표로 삼는가’의 차이 때문이다.
군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자신의 이익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와 주변사람들의 공공(公共)의 이익을 추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의 목표달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이것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그의 이름을 칭송한다. 이처럼 군자의 인생은 사람들의 존경과 칭송으로 인해 점차 빛이 나게 되고 그에 따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영향력도 점차 커지게 된다. 반면 소인은 매사에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한다. 또한 주변사람들을 그다지 의식하지도 않고, 공동의 목표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무시해 버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점차 그를 비난하고 무시하게 된다. 그 결과 소인의 인생은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력도 갖지 못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소인적인 삶의 결말이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는 말은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군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의 인생을 빛이 나게 가꾸어 나가는 사람이다. 반면 소인은 개인의 욕심과 편견으로 자신의 인생을 점차 초라하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은 것이 욕심이다. 이러한 사람을 공자는 하달(下達)로 표현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지금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을까? 하루하루 나의 인생을 빛이 나게 가꾸어 가며 생활하는가? 아니면 끝없는 욕심에 빠져 내 삶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출전: 『논어(論語)』「헌문(憲問)」
#내용소개: 진성수(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