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는) 백성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분배가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불안정한 것을 걱정한다.
- 엄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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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7
계씨가 노나라 사직의 신하가 되는 전유(顓臾)를 치려 한다고 염유(冉有)와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알리자 공자가 통치자의 덕목은 백성이 적은 것보다는 재물을 고르게 분배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가난함보다는 나라가 안정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맹자』에는 추나라와 노나라가 싸움을 하여 추나라 관리들이 33명이나 죽었는데도 백성들은 죽은 사람이 없이 전쟁을 회피한 일에 대하여 추나라 임금이었던 목공穆公이 백성들을 모두 징벌하여 죽이자니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하고, 죽이지 않고 그대로 두자니 윗사람을 깔보고 무시할 것 같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를 맹자에게 질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평소에 맹자는 군주들의 도덕적 자질을 강조하면서 정치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대체로 통치자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성향을 보였던 만큼, 결코 왕의 기분을 맞추거나 아첨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맹자는 여기에서 흉년이 들어서 기근으로 임금의 백성들 가운데 노약자들은 계곡의 구렁덩이 뒹굴어 죽으며, 건장한 사람들은 수천 명이 사방으로 흩어져 떠도는데 임금의 노적은 쌓이고 곡식창고와 재물창고는 가득 차 있는데도 관리들이 아무도 창고를 열어서 백성들을 구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알리지 않으니, 이것은 윗사람이 오만하고 교만하여 아랫사람을 잔혹하게 대하는 것이라(『맹자』「양혜왕 하」)고 하였다. 이렇게 통치자가 재물창고를 열어 고르게 베풀지 않고 백성들이 삶을 도외시하면 나라가 불안정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일상적으로 하는 말에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등의 말은 상대적 박탈감을 표현하는 말로서 생물학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큰 것을 말해준다. 유가철학에서는 예(禮)를 ‘문식(文飾)’ 또는 ‘문화(文化)’로 해석할 수 있다. 곧 예는 인간적인 세련됨을 뜻하는 것으로 중국의 정신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인 동시에, 이 예에는 사욕보다 공적인 의리(義理)가 내포되어 있다. 위 『논어』의 구절은 예와 같은 문화적 규범을 강조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는 ‘불편한 것은 참아도 아름답지 못한 것은 참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하이힐을 신을 때 불편한 것보다는 이것을 신을 때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는 것을 말해 준다. 중국 고대 임금 중에는 나라가 큰 것을 추구하지 않은 탕이나 문왕과 같은 군주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덕으로 어진 정치를 행하여 왕도정치를 행했던 임금들이었다. 아마도 탕임금이나 문왕이 다시 태어나 왕비 태사(太姒)와 함께 프랑스에 간다면 왕비들에게 역시 기쁜 마음으로 하이힐을 신으라고 하지 않았을까?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는 요즈음 한국 사회를 보면서 공자의 말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 출전: 『논어(論語)』「계씨(季氏)」
# 내용소개: 엄연석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