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을 하지만, 도가 없는데도 벼슬을 하는 것은 수치다.
- 임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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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28
논어헌문편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헌(原憲)이 ‘수치’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공자가 대답했다.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 도가 없는데도 벼슬을 하는 것은 수치다.” 공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한마디로 참 잘 드러내는 문장이다.
‘수치’에 대해서 물어보면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수치스러운 사건을 떠?첩?것이다.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려고 급히 뛰어들다가 가방이 문에 걸렸다든지, 공개적으로 남한테 무시를 당했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런데 공자는 원헌이 ‘수치’에 대해서 물어볼 때 머릿속에는 ‘벼슬’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저 없이 ‘무도(無道)한 세상에 벼슬하는 것이 수치’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제자 원헌은 공자가 사망한 뒤에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가난하지만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겼다.
공안국은 ‘곡(穀, 곡식)’을 ‘녹(祿, 녹봉)’이라고 해석하고, 나라에 도가 있으면 녹을 먹는 것은 당연하지만, 도가 없으면 녹을 먹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송나라 유학자 주자는 좀 색다른 해석을 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아무 하는 것도 없이 월급만 받아먹거나, 도가 땅에 떨어졌는데 혼자만이라도 착하지 못하고 월급 받을 것만 생각하는 것은 모두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주자 생각은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열심히 일을 하고, 도가 없을 때는 혼자만이라도 도를 행하라는 것이다.
공자나 주자의 시대에 중국은 모든 권력을 ‘임금님’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대였다. 헤겔의 표현을 빌자면, “중국에서는 한사람의 전제군?斂?꼭대기에 앉아서……조직적인 구성을 가진 정부를 지도하고 있다. 거기서는 종교나 가사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가의 법으로 정해져 있다. 개인은 도덕적으로 자기가 없는 것과도 같다.” 말하자면 당시, 춘추시대나 남송시대 중국은 인권이나 민주주의 개념을 몰랐던 전제주의, 독재주의의 시대였다. 공자의 문답은 그런 시대의 사상을 드러낸 것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위의 문장을 바꿔보면 어떨까?
나라에 도가 있거나 없거나 벼슬을 하는 것 자체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벼슬을 하는 순간부터 나라의 도에 대해서 깊은 책임을 느껴야한다. 지금 시대는 어느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각 개인 모두 자기 나라가 무도(無道)한 세상으로 치닫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과 권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 일, 그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출전 :『논어』,「헌문」
# 내용소개 : 임태홍(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