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 강중기
- 조회수11569
- 2014-03-28
어진 사람은 공자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어질다는 말은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거의 통용되지 않지만,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꾼다면 아마 배려 정도가 가장 가까운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이 의미에 따른다면, 어진 사람은 자신의 이해관계나 안위만을 돌보지 않고 타인의 처지나 심정을 헤아려 처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그와 같은 어진 사람만이 참으로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말은 그렇다 쳐도, 어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진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논어에 있다.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옳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옳지 않다. 마을 사람 중에 착한 이들은 좋아하고 착하지 않은 이들은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論語 「子路」)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은 각기 시비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터인데, 그들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은 일관된 기준 없이 상대에 따라 호의를 구걸하는 자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향원이다. 공자는 말한다. “향원은 덕을 훔친 도둑이다.”(子曰, “鄕原, 德之賊也.” 論語 「陽貨」) 향원은 실제로는 덕이 없으면서 덕이 있는 척하는 사람이다. 공자??모든 사람에게서 호의를 얻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시비선악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일관되게 처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 출전 : 『논어(論語)』「이인(里仁)」
* 필자 : 강중기(서울대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