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도리는 덕성을 키우고, 사람들과 친하며, 지극히 선한 경지에 오르는 데에 있다.
- 임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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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3-28
『논어』,『맹자』,『중용』과 함께 사서(四書)로 불리는『대학』에 있는 문장이다. 소위 3강령으로 불리는 이 문장은, 정현(鄭玄, 127-200)이나 공영달(孔穎達, 574-648)의 해석에 따르면 통치자가 국정을 이끌어가는 요령을 설파한 것이다. 우두머리 되는 자신이 먼저 심신을 수양하고, 그것을 통해서 백성을 다스리면, 선정(善政)이 구현되며 백성들(民)이 복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頤)는 이 문장을 ‘배움을 처음 시작한 자가 덕으로 들어가는 문(初學入德之門)’이라고 정의했다. 개인 수양의 대강을 제시한 문장으로 본 것이다. 주자는 이러한 해석을 계승하여 3강령을, 대인(大人)이 학문하는 목적을 소개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위 문장을 해석하면서, 하늘이 부여해준 밝은 덕(明德)을 처음의 상태로 다시 밝게(明) 하고, 다른 사람들도 지금까지의 더러움을 말끔히 씻어내도록(新民) 도와야 한다고 풀이했다. 그는 ‘친민(親民)’을 정이의 해석에 따라 ‘신민(新民)’으로 풀이했다. 또 지극히 선한 경지란 천리(天理)의 극치를 이루며 인욕의 사사로움이 전혀 없는 경지로 보았다. 한편, 다산 정약용은 대학(大學)은 태학(太學), 즉 고대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 보고 통치자를 위한 배움의 도를 설파한 것으로 3강령을 해석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정치가나 철학자가 되고 싶지 않은 보통사람들에게 이러한 풀이는 공허할 뿐이다. 3강령은 배움에 대한 옛사람들의 지혜 정도로 여기는 ?痼?오히려 이 문장의 진면목을 이해하는데 좋다. 우리가 빵 굽는 기술을 배운다고 하자. 아무 생각 없이 그 기술을 배우는 것에만 몰두하면 작은 배움, 즉 소학(小學)이다. 좀 더 큰 배움, 즉 대학(大學)이란, 빵 굽는 기술을 습득하면서 나의 좋은 습관과 덕성을 키우는 것(明明德)이다. 나아가, 그 기술을 배우면서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계기를 만들거나 그 요령을 배우면 더욱 좋다(親民). 혹은 그 빵 기술을 사용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新民) 한발 더 나가서 빵 굽는 기술을 배우면서, 혹은 습득된 그 기술을 가지고 내 스스로가 지극히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止於至善) 그것이 바로 큰 배움, 즉 대학(大學)이다.
대학에는 3강령 뒤에 여덟 가지 조목(8조목)이 실천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다. 즉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身修),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꼼꼼하게 따지기를 좋아하고 머리가 영리한 주자는 이 8조목을 체계적으로, 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였지만, 역시 오늘날 보통사람들에게는 별로 감흥이 없고, 복잡할 뿐이다.
그저 배우는 사람이 염두에 두면 좋은 방법쯤으로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빵 굽는 기술을 잘 배우려면, 여러 가지 관련된 도구나 사물을 잘 살펴보고(格物), 관련 지식을 많이 습득하며(致知), 정성스레 빵을 굽도록 하고(誠意),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해야 빵이 잘 구어진다(正心). 나아가 빵 굽는 기술이라고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것도 자신의 마음을 닦은 일종의 수양 방법(身修)이라 생각하고, 그 기술이 자기 가족(齊家)과 주변사람들에게(治國) 그리고 이 세상에(平天下)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배운다면 그 배움은 훨씬 값진 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영학을 배우든지, 영어를 배우든지, 아니면 수영이나 요리를 배우든지 모든 배움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인군자가 아닐까?
# 출전 : 『대학(大學)』「경일장(經一章)」
# 내용소개 : 임태홍(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