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변함없는 마음을 지니는 것은 오직 선비라야만 가능하다.
- 손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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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1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먹고사는 문제가 언제나 중요하다. 육체적인 생존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신이 아무리 고상해도 그것이 발붙일 여지가 없어져 버린다. 그러기에 인간의 몸은 마음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ㅐ微?백성들의 생계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래야만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그 정치체제의 안정적인 유지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의 보장! 그것이 바른 정치의 첫 출발이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백성들을 부유하게 한 뒤에 그들을 가르치라.”라고 하였다. 부유하게 하라 함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보장해 주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고려 중기 이후 우리고유의 이상향으로 제시된 청학동(靑鶴洞)은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이다. 삼재불입지지 곧 세 가지 재앙이 들어오지 않는 땅이란 흉년 없고, 전쟁 없고, 돌림병[時疾] 없는 땅이다. 따라서 이는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곳을 가리킨다. 이처럼 바른 정치는 예외 없이 양민(養民)을 선결적인 과제로 삼는다. 이후 교민(敎民)을 생각하는 것이다.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그 체제의 버팀목이자 나라의 원기(元氣)로서 성인(聖人), 군자(君子)를 지향하는 인간상인 선비라면 그는 좀 달라야 할 것이다. 『맹자』에 따르면 비록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개인적으로 생존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자기가 몸담고 있고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 정치체제에 대하여 변함없는 충성심을 갖고 그것을 수호, 발전시키는 일에 소홀함이 없고자 하는 이가 선비이다. 체제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恒心]의 이면에는 이 체제가 결국 모든 백성들을 인간답게 잘 살 수 있도록 해 줄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정치체제건 그것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보자. 남북한 간에는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냐의 체제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사회에서 기득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이들 가운데 우리의 체제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일에 관여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을 뿐 아니라, 그 대안을 북한식 인민민주주의 체제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맹자의 기준으로 보자면 선비일 수 없다. 아니 일반 서민들보다도 훨씬 못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맹자도 미처 예상 못한 이런 부류의 출현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藍막?우리들의 정밀한 원인진단과 이에 바탕한 획기적인 어떤 처방이 필요하다. 아마도 그것은 교육과 정치의 대개혁을 통한 체제정비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맹자』 「梁惠王章句」上
# 손병욱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