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은 이를 보고 어질다고 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보고 지혜롭다고 말한다. 백성들이 날마다 그것을 쓰지만 알지 못하므로 군자의 도가 드문 것이다.
- 김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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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2
이는 인격체로서의 인간에게 필요한 온전한 덕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인간의 성품에서 어짊과 지혜로움은 모두 중요하다. 어짊과 지혜로움은 누구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덕목이지만 그 양자를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으며 더구나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이나 사태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 편견이나 선입관에 기울어지기 쉬우므로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상황이나 사태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어질다고만 해서 그가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이 지혜롭다고만 해서 또한 그가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이 진정한 인격체가 되려면 어짊과 지혜로움이 조화를 이루어 품성이 참다운 인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전한 사고나 태도를 지니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간단하고도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이를 제대로 터득하기는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이를 터득했다고 해도 올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주역』의 이 구절은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계도하고, 궁극적으로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으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구절은 유가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맹자는 자막이라는 현명한 사람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中을 잡는 것이 道에 가까우나 中을 잡고도 저울질함이 없는 것은 한쪽을 잡는 것과 같다. 한쪽을 잡는 것을 미워하는 까닭은 道를 해치기 때문이니, 이것이 한 가지를 들고 백 가지를 없애는 것이다.(『孟子』, 「盡心上」 :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所惡執一者, 爲其賊道也, 擧一而廢百也.) 이는 인간이 단지 고정된 격식만을 고집하려할 뿐 상황의 흐름에 대해서는 올바로 인식하지 못함을 꾸짖는다. 중용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실한 것은 하늘의 道이다. 성실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道이다. 성실하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중에 이르고 사려하지 않아도 체득하는 것인데, 그것을 따라 中道에 이르는 것이 성인이다. 성실하고자 하는 것은 善을 잡아 그것을 진실로 고수하는 것이다.”(『中庸』 :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이는 인간의 진실성이 공명정대한 원칙과 올바른 상황판단을 지녀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中道의 인격이 바로 『주역』에서 강조한 인간의 참모습, 즉 어짊과 지혜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출전 : 『주역』「계사전」 상편
* 필자 : 김연재 (공주대학교 동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