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은 2007년에 학부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면서 하버드대학의 교육목적을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이라고 선언했다. 이 ‘리버럴 에듀케이션’을 한국에서는 흔히 ‘교양교육’이라고 번역한다. 완전한 오역이다. 교양(敎養)이란 ‘가르치고 기르는 행위’이니, 곧 학생의 입장이 아닌 교육자의 입장만이 반영된 표현이다. 따라서 학생 스스로 학습하고 자유롭게 사고한다는 리버럴 에듀케이션의 원래 의미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길거리에 침을 뱉는다거나 식당에서 소란스럽게 굴 때 흔히 “교양 없다.”라고 말하는데 이럴 때 사용되는 교양이라는 말의 일상적 의미는 리버럴 에듀케이션의 본래 의미와 더더욱 멀다. 어찌됐든 교양교육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걸 지금 당장 바꾸지 못하는 이상 교양교육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대신 교양교육이라는 말의 한자어원이나 일상적 의미를 잊고 그걸 리버럴 에듀케이션이라는 영어 본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자체 번역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버드대가 말하는 교양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교양교육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밑에, 그리고 그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는 공자의 선언의 21세기 버전이다. 하버드대학에는 각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버드대의 교육목적은 전문분야 최고수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교양교육이다. 하버드대의 교육목적은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군자’를 기르는 것이다. 최고의 전문가들은 최고의 전문가들이기 이전에 먼저 교양교육을 통해 자유롭게 사유하고 비판하는 정신을 길렀다. 이러한 교양교육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흔히 중고등학생 시절 꿈을 많이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꿈들이 대부분 그릇에 관련된 것들이다. 변호사라는 그릇, 의사라는 그릇, 공무원이라는 그릇만을 목표로 한다. 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생기는지, 왜 우리 엄마는 기호 1번, 우리 아빠는 기호 2번만을 무조건 찍는지, 왜 우리 집은 교회에 다니고 건넛집은 절에 다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오로지 좋은 점수로 안정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을 잡는 것만을 목표로 한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라는 공자의 일갈을 되살리는 중심엔 교양교육이 있어야 한다. <출전> : 『論語』 「爲政」 <집필자> : 채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