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만물이 함께 자라면서도 서로 해치지 않는다.”(萬物竝育而不相害)라는 구절에 상응한다. 만물이 제각기 생명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질서이다. 자연에는 약육강식이 일어나더라도 전체적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에서는 상대방을 전멸시키려드는 것을 찾을 수 없고, 오직 인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하거나 일본군이 남경대학살을 저지르는 것만이 아니다. 동족이면서도 이념이 다르다고 학살을 자행했던 것은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믿는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두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라 외치는 믿음도 인간만이 지닌 독선과 잔학성을 잘 보여준다. 중세의 교회가 마녀사냥이나 이단재판을 벌여 무수한 사람들을 살육했던 것도 독선적이고 잔학한 성질의 인간이 확신에 차서 저지른 짓이다.
“도리가 함께 운행되지만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사실의 서술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온갖 종류의 도리니 진리니 이념들이 제각기 옳다고 자기주장을 하지만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치고 대립하는데, 어찌 어긋나지 않는다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나 ‘국민의 뜻’이라는 말도 정치인들이나 사회단체에서 제각기 목청을 돋우어 주장하지만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차라리 도리니 진리니 이념 따위를 내세우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악착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을 서술한다면 인간의 성품도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인간은 선하게 살아야 마땅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희망이 있으니, “인간의 성품은 선하다”라 하여 격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내세우는 도리를 옳다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도리가 옳은 것이 아니라, 서로 어긋나지 않을 때 비로소 옳은 도리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로 이해 못하는 도리,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진리, 서로 남을 인정할 수 없는 이념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만 진리요 나만 도리라는 주장은 진리와 도리에 역행하는 것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도리요 진리요 이념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조건임을 가르쳐주는 말씀이라 생각된다.
<출전> : 『중용』(3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