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辭讓之心 禮之端也 <해석>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실마리이다. <내용> 세월호 사건을 통해 유교가 말하는 인간의 덕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인의예지. 그 가운데 으뜸은 물론 인이다. 인이란 내가 나 아닌 다른 어떤 것에 내 마음을 투영하는 공감 능력이다. 다른 사람이 다쳤지만 내가 다친 것처럼 느끼고 내 자식이 죽지 않았지만 내 자식의 죽음처럼 슬퍼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인이라는 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 사회에선 별다른 쓸모가 없어져버린 유교이념이지만 인에 대한 통찰만큼은 현대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가치 있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그나마 내세울 수 있다. 의(義)는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정의와 상통하고 지(智)는 지식, 혹은 지혜와 상통한다는 점에서 역시 그 현대적 가치를 주장할 여지가 있다.허나 예(禮)는 그렇지 않다. 네 가지 덕목 가운데 유일하게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덕목이 예이다. 인이 부족하다든가 의롭지 못해서, 혹은 지혜롭지 못해서 문제가 될지언정 인, 의, 지 덕목 그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유독 예에만 허례허식이라는 부정적 수사가 곁들여진다. 조선조 내내 당쟁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예송은 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결정적 사건이다. 조선은 상례와 제례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는 다른 덕목과는 달리 그 내용 자체가 문제되는 비운의 덕목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여전히 예는 중요하다. 마치 희생자 가족인 것처럼 연출되었지만 실상 일반인이었던 어느 할머니와 대통령의 포옹 장면에 국민들은 분노한다. 검은 옷을 갖춰 입고 숙연한 표정으로 우리를 위로한 먼 나라 방문객들에게 우리는 고마움을 느끼며 화사한 푸른 색 옷을 입은 우리의 대통령에게 실망감을 느낀다. 울부짖는 희생자 가족들 틈에서 라면에 젓가락질해대던 교육부장관 역시 한심스럽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라면 정도는 사양할 줄 알았어야 한다. 예쁜 옷을 권하는 코디의 권고를 거절할 줄 알았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는 반복해서 예에 어긋난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의 비례만으로도 그들의 본성이 어두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한 축을 심각하게 결여한 지도자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나아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예 하나 뿐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우려는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다. <출전>:『孟子』 「公孫丑」上 <집필자> : 채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