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生於憂患而死於安樂<해석>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사람이 살아가면서 견디기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이유 없는 고통일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이처럼 삶의 선악에 화복이 합당하게 대응하지 않는 현상을 ‘생의 부조리’라고 한다. 실제로 사람살이에서 선한 행위가 반드시 복으로 이어지고 악한 행위가 필연적으로 벌을 받지는 않는다.
생의 부조리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서고금에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칸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 현실세계에서는 선악에 대해 화복이 적합하게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사후에 신의 공정한 심판을 통해 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합당한 상을 주고 악한 행위에 대해서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것이다. 동양의 고전 <명심보감>에서는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후손에게 좋은 일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다. 선행을 지속한다고 해서 꼭 당대에 복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후대에라도 반드시 상응하는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조상의 음덕’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것 또한 생의 부조리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하겠다.맹자는 생의 부조리 문제에 대해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라고 선언함으로써 해답을 제시한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그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그 몸을 수고롭게 하며, 뭔가를 행하려고 할 때마다 그 하는 일을 어렵고 더디게 만든다고 한다. 이는 마음을 움직여 성품을 참을성 있게 하고 그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심과 걱정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적극적인 계기가 되고 편안함과 즐거움은 스스로를 나태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요소가 된다. 그래서 “근심과 걱정 속에서는 살고, 편안함과 즐거움 속에서는 죽는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맹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생의 부조리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진취적인 방식이라 하겠다. 사후의 심판 혹은 신의 존재를 요청하거나 후대의 화복에 기대는 방식에 비해, 인간 삶에서 부딪치는 부조리라는 문제를 스스로 감내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단련시키고 고난을 수반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적극적인 계기로 전환시키는 점이 돋보인다. 이는 유학이 현대사회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측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출전> 『맹자』 「고자하」
<집필자> 강중기 / 서울대 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