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해석> 먹는데 배부른 것을 구하지 않고, 거처하는데 편안한 것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처리하는 데 민첩하고 말하는 것에 신중하며, 도가 있으면 곧바로 나가서 자신을 바로잡는다면 그야말로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할 만하다.<내용>『논어』의 제1편은 그의 ‘배움’과 ‘공부’에 대한 생각들이 나타나 있는 學而편이다. 오늘날 배움과 학교가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학이편이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말이 지금으로부터 2천5백 여 년 전이고, 오늘 인류문명의 선진 그룹이라고 하는 서구에서도 보편적으로 초등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2백여 년 전인 것을 생각해 보면 그의 사고가 얼마나 선진적이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와 근거가 ‘배움’(學)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그의 종교가 되었고, 구도의 길이 되었다. 공자의 이런 생각이 대략 기원전 5세기경이므로 소위 서구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한 인류 문명의 ‘차축시대’(die Achzenzeit, the Axial age)에 이루어진 사유이다. 그 중에서도 인도사상이나 유대기독교사상과는 달리 오늘의 구분으로 좁은 의미의 종교라기보다는 학문과 배움, 공부와 같은 보다 보편적인 인간적 문명의 길을 제시했으니, 오늘날 제2의 차축시대를 말하면서 인류 모두를 보편적으로 함께 묶을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의 길을 찾고 있는 중이라면 이러한 공자의 배움 이야기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공자는 이 짧은 구절의 말로써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에서 관건이 되는 문제들을 모두 언급했다. 그러면서 공부와 배움이란 우리의 보편적 삶이나 일상의 일과 긴밀히 연결되는 것임을 지적해주었다. 그의 말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보면, 배움과 학문의 네 가지 일이란 먼저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이 되는 일이다. 먹고 사는 일은 삶의 기본이지만 인간은 배움을 통해서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되고, 과한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부라는 것이다. 둘째, 공적 삶에서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은 서로 함께 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는 일에서 나태하거나 책임을 방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경계로서,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공적 영역에 대한 책임과 배려를 키우는 일이며, 무능력과 무책임성을 깨쳐나가는 일을 말한다. 셋째는 말과 언어에 있어서의 배움이다. 인간다움은 말과 언어에서 드러나므로 배움이 깊어갈수록 언어가 신중해지고 품격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일상의 언어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말로 세상을 파악하고 세상을 고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일까지 언어를 잘 쓰고, 그 언어로 삶의 질과 향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일을 공자는 배움과 교육의 중요한 일로 파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됨은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 일에 지체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 모두가 귀하고 유일하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 우리 삶에는 선생이 있고, 전문가가 있으며, 우리는 실수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깨달음과 더불어 노력하고 더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호학자, 배움을 좋아하는 자, 인간성을 잃지 않는 자, 인간성 자체라는 것을 공자는 가르친다. 돈에 휘둘리지 않고, 공적 책임에 민첩하고, 언어를 잘 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에서 게으르지 않는 것. 이 네 가지 가르침에 비추어서 오늘 온갖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공부와 배움과 학교와 교육을 돌아볼 일이다.<출전> : 『논어』 「學而」<집필자> : 이은선/ 세종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