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해석> 道에 뜻을 두며, 德에 의거하고, 仁에 의지하며, 藝에 거닌다.
이 말은 술이편 6절의 말씀으로 보통 학문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언행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된다. 하지만 나는 이 한 문장에 공자 전체의 삶, 유교 전체의 가르침이 핵심적으로 잘 집약되어있는 언술로 본다. 여기 드러나 있는 네 단어, 道, 德, 仁, 藝(禮)는 공자가 평생 동안 숙고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고자 한 의미들인데, 모두가 그의 깊은 내재적 초월에 대한 신앙을 드러내주는 단어들이라고 하겠다.
공자는 이미 그의 ‘이인편’(里仁篇)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말씀을 했다. 이런 말들에서 도란 예를 들어 기독교 예수의 언술 중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등의 ‘진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일생동안 道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고, 전하기 위해 사신 것처럼 예수도 하늘 부모님(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고, 가르치고자 일생을 사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그 길에 들어선 호학자가 삶의 판단들에서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덕이다. 도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는 ‘덕’ 자는 ‘득’(得, 얻은 것) 또는 ‘직’(直, 곧은 것) 자와도 통한다고 한다. 그래서 덕이란 하늘로부터 얻은 인간의 기능, 곧을 수 있는 능력, 정직하게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의 뛰어남 등을 말하는 것으로 도를 지향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늘로부터 받은 덕에 근거해서 정직하게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뛰어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이겠다.
사람은 그렇게 옆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타인에게 속하는 것을 빼앗지 않고, 그 타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그에게 돌리면서 의롭고 덕 있게 살아가야 하지만 그 일이 쉽지가 않다. 공자는 그래서 ‘仁에 의지하는’ 삶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즉 이것은 인간에게 요청되는 더 근본적인 ‘신앙(信)’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때로 실수하고, 실패하고, 비인간적으로 타락하며 살아가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우리 속마음의 인간됨을 상기하면서 거기에 의지하여 새롭게 발분하여 도를 찾아가는 삶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앞의 덕이 보다 인식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라면 여기서 仁이란 보다 더 근본적이고 생래적인 하늘로부터의 시여를 지적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단어인 ‘예’는 예술의 ‘藝’나 예절의 ‘禮’ 모두를 포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늘의 도를 추구해가는 길 위에서 인간성의 본래적 선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아는 곧은 마음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살아갈 때 그 현재적 삶과 인격의 정조는 조화롭고, 평화롭고, 함께 함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공자 자신의 삶도 그렇고, 우리 모두의 삶과 정치가 지향하는 바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짧은 구절은 공자의 신앙, 정치, 교육, 문화예술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출전> : 『논어』 「술이」
<집필자> : 이은선 /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